혼밥과 혼술 - 보리굴비와 덕산막걸리
- 보리굴비가 말을 걸어오다
강의하러 가는 길의 발걸음에 무거움이 앞선다.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얘기해야 할지가 이미 정해져 있지만 마음 한 곳에 자리 잡은 중압감은 쉽게 벗어던지기 어렵다. 사람은 누구나 커다란 자기 세계를 가지고 있다. 각자의 자기 세계를 바라보며 무언가 메시지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다른 한편 내가 살아온 세계가 그동안 살아왔던 세계에게 다가가는 것은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거기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대개는 단순하게 메시지를 주고받는 물리적 변화에서 그칠 수도 있지만 가끔은 서로 빛나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화학적 변화를 통해 인연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늘 화학적 변화를 가져오는 보물창고와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처음 마주하는 음식은 긴장감마저 불어넣는다.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하다는 이유를 미루어 짐작하면서 2인분을 주문했다. 혼자 2인분을 주문하는 일이 별로 없어서 인지 다시 한번 되물어보신다. 나는 마음속으로 기꺼이 맛을 느끼기 위해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라고 생각했다. 덕산막걸리는 명주다. 음식을 비교하지 않지만 막걸리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장점을 꼽아본다. 막걸리의 맛은 물맛이 좌우한다. 아마도 내 생각에는 덕산 근처의 수원지가 전국에서도 가장 좋지 않을까라고 그냥 추측해본다. 탄산기가 없으면서도 첫맛이 전해주는 자극이 마시는 내내 가시지 않는다.
매력적인 한 잔을 마신 후 보리굴비를 한 점 발라 먹는다. 혼자 밥을 먹을 때는 음식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여럿이 밥을 먹을 때는 느끼기 어려운 미세한 부분까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혼자 밥을 먹으면 시간은 느려진다. 그 느려진 틈을 비집고 들어가 행복감을 캔다. 산란을 위해 3월 중순 영광 법성포 칠산 앞바다를 지나는 참조기를 쓴 굴비를 영광굴비라 하며 가장 유명하다. 고려 17대 인종 때, 난을 일으킨 이자겸이 정주(지금의 법성포)로 귀양을 왔다가 해풍에 말린 조기를 먹어보고 그 맛이 뛰어나 임금에게 진상하였다 한다. 그는 말린 조기를 보내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屈) 않겠다(非)'는 의미의 '굴비'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때부터 영광굴비는 수라상에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양질의 단백질과 비타민 A와 D가 풍부하여 몸이 쇠약할 때나 야맹증, 피로 해소에 도움이 된다. 지방질이 적어 소화가 잘되므로 발육기의 어린이나 소화기관이 약한 노인에게도 좋다.(두산백과)
모르고 먹어도 맛있고 알고 먹어도 맛있는 게 음식이다. 굴비가 어떤 효능과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를 때에도 굴비가 주는 독특한 약간 비릿하면서도 구수한 냄새는 온몸을 자극했다. 굴비의 살을 발라낼 때 살과 뼈와 내장과 껍질은 그 경계가 뚜렷하게 드러나 젓가락질을 하기가 쉽다. 고등어나 삼치는 그 경계가 모호하여 젓가락으로 갈라야 하지만 굴비의 살들은 그 경계가 명확하다. 아마도 시간을 두고 숙성시키는 과정이 있어서 그러하다고 추측해본다. 냄새와 맛이 나란히 내게 다가온다. 아주 작게 발려놓고 한 점 한 점 천천히 맛을 음미한다. 보리 굴 비속으로 빠져드는 순간, 보리 굴비가 내게 말을 건넨다. 그 말을 받아 음미한다. 그렇게 시작한 대화는 내장을 먹으면서 마친다. 굴비가 다녔던 바닷속에서의 시간과 육지로 와서 절여졌던 응축된 시간들이 내게 다가왔다.
돌솥밥은 따뜻한 온기가 있어서 좋다. 갓 지은 밥은 들녘의 싱싱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밥과 굴비는 입안에서 하나로 융합된다. 밥은 굴비를 닮아가고 굴비는 밥을 닮아간다. 입안 가득 하나가 된 맛을 느낀다. 반찬들은 밥과 굴비와 막걸리를 뒤에서 받쳐준다. 반찬이라는 조연이 없으면 이 밥상이란 얼마나 고독할 것인가? 식물의 뿌리와 줄기와 잎을 먹는 전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나라에 살고 있어서 이렇게 장에 좋은 반찬들을 먹을 수 있다.
굴비의 여운 속에 깊은 잠을 잤다. 꿈속에서 굴비가 살던 심해의 맑은 바다가 내 몸을 감싸서 외롭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