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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Sep 02. 2023

짜장면과 짬뽕 사이


가수 김광석은 라이브 공연에서 이런 얘기를 했었다.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는데 바로 옆자리에서 짬뽕 먹는 사람을 보면 짜장면보다 짬뽕이 더 맛있어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다음번에 갔을 때는 짬뽕을 주문했는데 이번에는 짜장면을 먹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맛있게 먹고 있는 거 같아서 짜장면이 또 먹고 싶어 지는.... 그래서 짜장면과 짬뽕과의 갈등 관계를 대부분의 사람이 겪고 산다고 했다.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여러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는데 이것처럼 아주 사소하고 작은 선택에서조차 이렇게 갈등을 하게 된다는 것. 


오늘은 짬뽕을 주문했다. 그것도 난생처음 면이 없는 짬뽕을 주문하면서 왜 짜장면은 '면'이 있는데 짬뽕은 짬뽕면이라고 하지 않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데 밥종류로 보면 짜장밥과 짬뽕밥이라는 명칭에서 분명히 밥을 선언하고 있다. 왠지 '면'의 명칭을 박탈당한 짬뽕만 소외되고 홀대받는 느낌이 든다. 아주 오래되었다. 내가 짬뽕이나 다른 메뉴를 선택하고 확률상 반드시 한 두 명은 짜장면을 선택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곱빼기를 주문하지는 않는다. 그럴 때 내가 곱빼기를 주문하라고 부추긴다. 의도는 명확하다. 곱빼기로 나온 짜장면의 일부를 공유받는 것으로 나는 짜장면과 짬뽕을 모두 맛볼 수 있는 호사와 행복감을 누리기 위해서. 모양이 빠져 보이기는 하지만 모양이 나의 입맛과 만족감을 가져다주지는 않으므로.


지금은 다른 대학으로 옮겨간 후배님이 계시는데, 이 후배님과 중식을 먹으러 갈 때는 너무 즐거웠다. 이런 나의 고민을 알고는 일부러 늘 곱빼기와 가위를 주문해 익숙한 솜씨로 작은 그릇 담뿍 짜장면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생각을 읽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줄 수 있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그 후배님이 다른 대학으로 가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그거다. 그런데 이걸 그 후배님이 없는 상황에서 다른 누군가에게 대놓고 말할 수 있는가? 내가 그렇게까지 뻔뻔하지는 않다. 

오늘 오신 손님들은 우리 대학의 스타트업 시설을 참관하시면서 굉장히 흥분되어 있었다. 어떤 음식이 나오는지 누가 무엇을 먹는지는 신경 쓰지 않고 그 감동과 흥분을 주제로 얘기꽃을 피우고 계신다. 난 짬뽕과 짜장에 신경이 가있다. 헐 무지무지 미안한 마음이지만, 난 예전보다 숫기가 사라진 게 확실하다. 이런 진지한 얘기를 나누는 분위기에서 처음 본 분에게 짜장면 보통 말고 곱빼기를 주문할 것을 요청드렸다. 당연히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내가 이 어색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김광석의 얘기부터 시작해 짬짜면이 왜 실패했는지 등에 대해 장황하게 얘기를 늘어놓았다. 


사람이란 늘 타인에게 이해받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라는 걸 내가 직접 시범보이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뭐 어떠랴? 난 오늘도 두 가지를 맛볼 수 있고, 지금 내가 맛보지 못하면 그 맛은 영영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왜냐하면 오늘 점심은 오늘 점심이지 내일 점심은 아니기 때문에. 


그러고 보니, 짜장면과 짬뽕에 대한 선택 갈등은 다른 음식들로도 확대될 수 있다. 김치찌개와 청국장 혹은 된장찌개/비빔막국수와 물막국수/비빔냉면과 물냉면/소보루빵과 단팥빵/팥빙수와 망고빙수..... 그런데 어디 음식뿐이랴? 오늘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내일이 달라지고 모래가 달라지니.... 어떤 선택을 하건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선택을 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아 너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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