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버님이 남긴 빛이 비치는 우리의 삶
2016년 11월 9일 아버님께서 하늘나라로 가신지 7년이 지났다. 4년간 병상에서 지내셨을 때 자주 찾아뵙지 못한 아쉬움과 같은 하나마나한 생각보다는 아버님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돌아보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아버님은 돌아가셨지만, 아버님께서 살아계신 동안 남기신 삶의 흔적들이 여전히 나와 우리 가족의 삶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가을 태백에 혼자 지내시던 어머님의 건강을 위해 아들들 집으로 두 달씩 지내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우리 집에서 어머님은 매일 아침 일어나서 나와 아내와 같이 집 앞 중학교 운동장을 같이 산책했다. 그때 같이 걷기 운동을 하셨던 할머니를 오늘 아침 뵈었다. 그때보다 걸음은 많이 둔해지신 것 같다. 어머님은 그때를 전후로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셨고 이후 경기도립노인전문남양주병원에서 요양을 받으시면서 지금은 4년 전보다 더 건강해지셨다. 그때 같이 걷기 운동을 하셨던 어르신을 뵙고 보니, 어머님께서 건강을 회복하고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해 주신 아버님의 영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젊은 시절 광산에 아버님의 땀과 노동과 노고를 밀어 넣으신 결과는 노년에 연금으로 돌아와서 자식들에게 아무런 부탁을 하지 않고 사셨고, 돌아가신 뒤 그 연금이 어머님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돌아가셨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계시다니.... 그 접점은 어머님께서 살아계시는 동안 지속될 것이다. 그보다 더 큰 접점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리 삶을 환하게 비춰줄 빛이다. 그렇다. 아버님은 어머님과 우리들을 위해 빛을 비추고 계신다. 그 빛 안에 아버님과 함께 잠들어있던 나와 아버님과 추억을 떠올려본다.
@2. 2016년 1월
광부일을 하시며 폐에 쌓였던 탄먼지와 돌가루의 명칭은 진폐와 규폐다. 그 단어들이 암시하는 죽음에 대한 그림자에도 불구하고 청춘을 탄맥에 갈아 넣으신 이유는 단 하나다. 나와 같은 삶을 살게 하지 않도록 내 한 몸 바쳐 가족을 부양하고 자식들이 나와 같은 길을 가지 않도록 희생하는 것이었다. 아버님은 그 무섭고 막막한 직선을 한 걸음씩 밟으며 걸어가셨다. 2016년 1월 새해 첫인사를 드리러 병원을 방문했다. 아버님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침상에 누워계시다 나를 맞으셨다. 마침 그동안 아버님을 뵐 때마다 문답식으로 작성해 놓았던 아버님과 어머님의 일생에 관한 글을 인쇄해 갔다. 그 글을 좋아하셨다. 자신의 삶의 기록을 인쇄물로 받아보시면서 새로운 감회를 받으셨다.
그리고는 그동안 고민했던 얘기를 꺼내셨다. 날이 갈수록 기력이 쇠약해지시므로 하나씩 삶의 가지들을 정리하시는 것임을 직감했다. 그동안 모아놓으신 돈 얘기를 꺼내셨다. 대략 1억 원 정도 되는데 삼 형제가 나누어 쓰면 어떻겠냐고 하셨다. 자식들을 생각하는 마음 앞에 한없는 무력감과 울컥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겨우 입 밖으로 말을 꺼냈다. 그 돈은 아버님께서 안 입고 안 쓰고 모으신 것이라 우리가 절대 사용할 수 없다고. 그 돈은 어머님께 드리면 좋겠다고. 아버님 사후 어머님께서 살아가시는데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병원을 나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자신을 위해서 돈을 잘 사용하지 않으시고 악착같이 모으신 그 돈을 자식에게 주고자 하는 그 마음에 나는 절대 가닿을 수 없다는 것을….
젊고 체력이 좋던 시절에 안주에 돈을 쓰기보다
모아두었다가 자식에게 줄 생각을 하는 아버지
병이 들어 앞날을 알 수 없는 그 순간에도
자식을 생각하고 자식에게 남길 것을 얘기하는 아버지
도대체 부모란 어떤 존재인가?
무엇이 이토록 자신의 즐거움이나 기쁨을 희생하고 그 위에 우리를 두려 하신 걸까?
왜 나는 나의 즐거움과 나의 기쁨을 자식들에게 조금도 양보할 뜻이 없는 것일까?
아버님과 어머님의 희생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너는 그렇게 살지 말고 너도 즐기며 살라는 배려였는가?
말로 가닿을 수 없는 곳에 더 깊은 삶의 의미가 있고 순수한 영혼의 교감이 있다.
살아있는 동안 아버님 삶의 의미를 생각할수록 나를 의미 있는 삶으로 계속 끌고 가는 힘이 생길 것이다.
나 또한 아버지로서의 삶을 살고 있지만, 부끄럽기 그지없다.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을 덜어낼 수만 있다면 그것은 아버님의 삶을 반추하고 거기서 계속 배움의 샘물을 퍼올리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