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시장기가 밀려온다. 주방을 가보니 점심에 먹다 남은 콩비지찌개가 있어 콩밥에 찬 콩비지를 세 숟가락 떴다. 찬 돼지고기도 한 점 먹었다. 시장기가 밀려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머리가 띵하다. 위장이 경직되어 나타나는 현상을 흔히 "체했다"라고 표현하는데 딱 그 느낌이다. 약간의 어지러움과 메슥거림이 동시에 찾아온다. 위가 약해져서 그런가 하고 생각하다가, 콩류의 음식이건 다른 음식이건 찬 상태로 먹었을 때 소화기능이 떨어질 수 있었던 과거의 경험을 생각해 보았다.
@2. 망각의 딜레마
배고픈 위장에 부드럽고 따뜻한 음식을 먹어 워밍업을 시키지 않고 찬 음식을 먹으면 위가 경직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 망각은 한편으로는 잊고 싶은 것을 잊게 만들기도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들을 기억하지 못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도 하니 참 아이러니다. 혹시 의학 논문은 도움이 될까 하고 찾아보니 정의에서부터 복잡하고 진단을 위해서는 그동안의 이력과 정확한 검사 등이 필요하다고 한다.
@3. 체기를 가라앉히는 방법
히포크라테스가 말한 음식과 약은 그 뿌리가 같고, 음식으로 치료할 수 없는 병은 약으로도 치료가 안된다는 동의보감의 얘기는 같은 지향점을 갖는다. 어떤 증상이 있으면 곧바로 약을 떠올리는 버릇을 내려놓은 지도 세월이 꽤 되었다. 이십 대 후반부터 삼십 대 초반까지 이런 증상이 나타날 경우, 액체 위장약을 먹거나 소화제를 먹던 일이 생각났다. 어느 날은 열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 피를 내기도 하고 그래도 좋지 않을 경우 엄지발가락까지 바늘로 딴 적이 있다. 따면 체기가 가라앉는 것이 민간요법인데, 거기에 의존했다. 소화제도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약은 먹으면 마실 때만 효과가 있는 듯하지만 쉽게 증상이 개선되지 않는다. 바늘로 따는 것도 어느 정도 효과는 있겠지만 그 과정이 힘들고 위생적이지 않다. 1993년 선배 학원 오픈 행사에 갔다가 찬 음식을 먹고 거의 쓰러지기 일보직전까지 갔을 때, 선배의 형수님께서 두 엄지손가락으로 팔꿈치 바로 밑의 근육을 힘껏 눌렀다. 눈에서 눈물이 쏟아질 정도로 통증이 심했는데 체한 기운이 금방 가라앉았다. 그때 경직된 위장근육과 팔근육이 연결되어 있음을 바로 알아냈다. 그런데 이게 모든 체한 기운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4. 먹는 음식에서 치유의 음식으로
그러다가 다시 음식으로 눈을 돌렸다. 체한 기운의 원인이 음식이라면 다시 음식을 통해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따뜻한 음식, 가공된 재료를 사용하지 않은 집밥은 내 몸이라는 터전을 만들어준 음식이다. 집밥이라는 성채 안에 편안함과 따뜻함, 평화와 안식, 치유의 힘이 깃들어있다.
음식은 끼니를 해결하는 게 주목적이었다. 음식맛을 깊이 음미하는 것까지 나갔다가도 다시 돌아오곤 했다. 대략 5년 전부터 음식이 가진 놀라운 치유능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우연히 후추를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후추를 사전에서 찾아보고 놀랐다. 피페린이라는 성분의 염증유발 억제 효과, 소화효소를 자극하여 위산이 원활하게 분비가 될 수 있도록 해주고, 식후 더부룩한 증상이나 소화불량과 같은 증상을 개선, 체내 혈관 순환을 개선해 주는 효과....
내가 잘못 본 것인가 하고 다른 음식들을 찾아보았다. 상추는 철분과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여 체내 혈액 용량을 증가시키고 피를 맑게 하는 청혈 작용, 상추의 잎줄기를 꺾어보면 우윳빛의 액즙이 나오는데 이 액즙의 락투카리움(Lactucarium) 성분은 심신을 안정시켜 스트레스와 통증, 불면증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며, 섬유질이 풍부하여 장 내 환경 개선과 변비 해소에 효과, 풍부한 수분과 다량 함유된 비타민 A와 C는 피부를 윤기 있고 탄력 있게, 엽산과 철분 또한 풍부하게 들어있다고 한다. 자연에서 채취한 대부분의 음식이 이와 같은 내용들로 채워져 음식을 먹기 전 사전 찾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5. 치유의 힘을 지닌 집밥
대부분의 사람들은 탈이 났을 때 음식을 멀리하는데, 나는 정반대로 음식을 먹어야 편안해진다. 먼저 따뜻한 콩비지를 한술 뜬다. 따뜻한 기운이 몸을 녹이고 부드러운 콩비지가 편안하게 몸으로 스며든다. 마늘이 슬쩍 배어있는 가지무침 그 안에 꽉 찬 수분이 몸으로 흡수된다. 물을 마셔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활력의 수분이다. 식물에 함유된 수분과 우리가 그냥 마시는 물의 수분과는 질적 차이가 있음을 책을 통해서 알고 있던 것과 직접 느껴보는 것은 다르다. 다른 그 지점에서 내 몸은 점점 안도하고 편안해진다. 안토시안 성분은 잘 알려진 항산화제이며, 속이 더부룩한데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아울러 항염증 작용을 하는 루페올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편안해진 속에 파김치와 도라지 무침을 먹으며 입맛을 올린다.
음식을 먹고 난 후 그 음식물들이 몸에서 소화되는 과정의 미세한 부분을 알기는 어렵다. 느끼기도 어렵다. 음식을 먹고 편안하면 좋은 것이고 불편하면 안 좋은 것이다. 불편함에서 편안함으로 건너는데 집밥이 다리가 되어 주었다. 오늘과 같은 경험을 잊고 지나치면 또 실수를 반복할지 모른다. 이 불편한 느낌을 잘 기억해 두고 주의해야 한다. 대개 오래도록 건강에 대해 별 탈없이 살아오신 분들은 몸에 불편하거나 좋지 않다고 하는 것들은 피하고 편안하고 좋은 것들을 먹는 것을 그 비결로 꼽았다. 오늘 집밥은 편안함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