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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May 01. 2023

세수 - 일상의례와 감사하는 마음

@1. 무탈한 일상을 맞는다는 것


아침에 거울을 보면서 세수를 하다가 엊그제 사건을 떠올렸다. 해운대 숙소로 들어오는 길에 돌턱이 있었는데 그걸 미처 살펴보지 못한 나의 부주의를 탓해야 하겠지만,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을 만들 때는 좀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연세 드신 분들이나 어린이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편안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무튼 한밤중에 돌턱에 걸려 앞으로 넘어졌다. 앞으로 넘어지는 순간, 아찔한 기분이 들고 얼굴이 곧장 바닥을 향했으나, 다행히 넘어지는 와중에 하체의 근육들이 무의식 중에 조금 시간을 벌어주었고, 그 틈에 왼손을 뻗어 찰과상을 입은 대신, 얼굴과 상체를 보호하며 충격을 최소화했다.


넘어진 상태에서 고개만 하늘로 돌려 잠시 누워 있었다. 나도 놀랐고 동료와 주변 사람들이 놀라서 달려왔다. 넘어질 때 꽤 큰 소리가 났고 누가 보더라도 얼굴부터 부딪치는 걸로 알아서 응급차를 부르려 했다고 한다. 얼굴을 다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왼손 등에 선명한 핏자국의 찰과상은 내 몸을 보호한 대가다. 넘어지는 순간 왼손이 먼저 나온 것은 왼손을 오랫동안 단련해서였으리라 짐작한다. 십 대 때는 왼손으로 팔 굽혀 펴기를 20회 할 정도였으니. 그리고 하체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 꾸준히 운동을 한 것도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끔찍한 상상을 하게 된다. 만약에 안면을 다쳤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2. 세수하는 나를 자각


찬찬히 얼굴을 들여다보고 세수를 한다. 얼굴을 씻는 일은 약간 신성한 느낌이 든다. 거울을 보며 세수를 하는 일은, 오늘 하루 잘 살아낼 나를 정화시키는 의식과도 같다. 지금 이 순간 여기 내가 거울을 보고 있고 물을 두 손으로 받쳐 얼굴을 문지른다. 살결들을 느끼고 살결 너머의 피부세포들이 작동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저 피부세포들은 3일에서 1주일 간격으로 매번 새로운 세포로 교체된다. 새로운 나로 매일 거듭나고 있고 그 거듭남의 표시들을 세수하면서 읽어보려 노력한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일까? 어제 나는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오늘은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나의 모습을 다듬어가는 세수를 하면서, 이 행위는 예의를 갖추는 출발이되, 그 예의를 갖추는 첫 번째 대상은 바로 나임을 자각한다. 




@3. 돌아봄과 새로운 준비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솔직히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면 대개는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살아왔다. 그럼에도, 매번 나를 가다듬는 세수를 한다는 것은 새롭게 긍정적으로 변화되는 나를 만들어보겠다는 다짐일 수도 있고 어제와 같이 소중한 가치들을 지켜가야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물은 원형질의 시원을 느끼게 해 준다. 뭔가 근본적인 에너지가 숨어있다가 나를 만져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물이 살에 닿는 촉감은 무척이나 싱그럽고 새로운 느낌을 선사한다.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의 그 물과 지금 내 손으로 받치고 얼굴을 씻는 이 물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을 것이다. 




@4. 조선시대에서는


조선시대 사람들은 하루의 일과를 세수로부터 시작하였다. 즉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세수한 뒤에 빗질하고서 사당에 참배하고 부모에게 문안인사를 올린 뒤 각기 일을 시작한 것이다. 또한, 외출하기 전에, 외출했다가 돌아온 뒤에도 반드시 세수하였다. 이와 같은 생활관습 때문에 나그네는 세숫대야를 휴대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이러한 세수 중시는 청결 관념의 소산이지만, 위생 관념과 철저한 예의가 복합되어 일상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목욕을 일상화한 청결, 그리고 세수하지 않은 얼굴로 남을 대하면 대단한 결례로 생각한 예절생활 등의 반영인 것이다. 또 하던 일을 바꿀 때, 예를 들면 주부가 부엌일을 시작할 때라든지 선비가 학업을 시작하기 전에 손을 씻고는 하였다. 한편,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자들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희고 깨끗한 피부를 염원한 바, 희고 깨끗한 피부를 가꾸기 위하여 세수를 자주 함과 아울러 세수에 정성을 쏟았다.(『한국화장문화사(韓國化粧文化史)』(전완길, 열화당, 1987),  [네이버 지식백과] 세수 [洗手]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5. 세수와 일상에 대한 감사


다시 무탈한 얼굴의 나를 어루만져본다. 허리를 다쳐 디스크가 걸려 오랜 세월 병치레를 했을 때 그 처음의 지점을 원망하고 후회하고 나를 미워했었다. 우익수 위치에서 수비를 보다가 2루수 공백이 생겼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자원했다가 타구에 코를 맞아 코뼈가 부서지는 사고를 당했을 때에도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하고 원망했었다. 물론 수술과정과 치료과정 내내 후회의 감정이 나를 지배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모래 섞인 흙에 미끄러지며 무릎이 꺾어져 후방 십자인대가 파열되었을 때에도 나의 부주의를 탓하고 후회하고 나를 원망했었다. 하지만 모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고 받아들이고 긍정하며 운동을 통해 새로운 나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극복해나가고 있고 몸에 관한 일상의 평안과 안식을 만들어왔다. 


어제의 위기 상황에서 만약 얼굴을 바닥에 부딪쳤다면 얼마나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을지 생각조차 하기 싫다. 한편 그렇게 되지 않고 왼손에 찰과상만 입고 이렇게 멀쩡한 얼굴을 바라보며 웃고 세수하고 나를 돌아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매일매일 하게 되는 세수는 일상의례로서 나를 새롭게 바라보고 나를 새로운 시간과 공간으로 안내하는 의식이다. 이 평범한 상황이 얼마나 감사한 상황인지를 미리 깨닫고 미리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도 그 의식이 주는 선물이다. 일상의례가 삶의 평안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가슴속에 품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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