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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Oct 29. 2022

한 끼를 해결하면서

@1. 한 끼를 자각


일하기 전 한 끼니를 먹으면서 불현듯 이 끼니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끼니를 거르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70억 인구가 매 끼니를 해결해가는 놀라운 메커니즘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세상 모든 이치를 아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만큼 끼니를 해결하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하고 기적과도 같다. 인류 역사에 등장했다가 사라진 수많은 사람들이 해결했을 그 끼니를 생각하면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헤거나 해변의 모래알을 헤는 것처럼 까마득하고 아득하다. 나를 스쳐 지나간 그 모든 끼들을 생각 해도 아득하고 까마득하다. 나는 오직 지금 여기서 이 한 끼를 겨우 생각할 뿐이다.



@2. 한 끼의 의미


아침·점심·저녁과 같이 일정한 시간에 먹는 밥. 또는, 그것을 먹는 일을 끼니라고 사전에 나와있다. 아주 단순한 정의다. 사전은 아주 명료하고 단순하게 어의를 정의한다. 그것을 일상 속에서 새롭게 발견하고 살을 덧붙여 의미의 영역을 넓히고 깊이 있게 하는 것이 곧 삶의 과정일 것이다. 어디 끼니뿐이랴? 일상 속에 들어와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끼니는 지금 당장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명적인 숙제다. 그것이 없으면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절박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그 끼니 안에서 평화와 안식을 취할 수 있다. 끼니를 해결해야 일도 할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고 사랑도 운동도 모든 것이 가능하다.

@3. 추억을 현재로 소환 - 집 밖의 음식들


태어나자마자 지금까지 끼니는 분명 매일매일 지나갔으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끼니는 희미하다. 그 안갯속에서 선명하게 떠오르는 끼니들이 있다. 지금이야 외식과 집밥의 경계가 명확하지만, 어렸을 때만 해도 외식은 년에 한두 번 이벤트였으므로 당장 생각나는 것은 외식이다. 난생처음 먹어본 음식들과 함께 추억이 소환된다. 가늘고 긴 냉면 줄기에 힘들어했던 일곱 살 시절.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먹어본 짜장면의 진하고 기름진 향기. 학교 근처에서 먹었던 핫도그와 어묵, 떡볶이.

@4. 추억을 현재로 소환 - 집밥


어머님께서 해주시던 집밥들은 그 정성과 노력과 오랜 시간에도 불구하고 선명하지 않은 걸 보면 아직 철이 덜 들었다는 얘기. 촉촉한 김치볶음밥의 시큼하고 달큼한 냄새가 소환된다. 맛을 구성하는 요소는 아무래도 뇌 속의 기억인 것 같다. 간장 베이스의 감자볶음의 구수하고 달달함. 생선살과 뼈의 식감이 살아있는 간장 베이스의 어묵볶음. 따뜻하고 시원한 뭇국과 아삭한 무 생채. 추운 겨울 눈밭을 헤매다 들어왔을 때 차가운 몸과 위장을 아늑하게 녹여준 멸치와 다시마 베이스의 어묵국, 생일날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챙겨주시던 싱그럽고 아늑한 미역국. 아버님께서 온 산을 누비면서 따와 어머님 손으로 비벼낸 산나물 무침, 여름날의 오이냉국과 한 솥 가득 담고 온 가족이 같이 먹던 찐 감자, 찐 옥수수, 개울 건너 양계장에서 갓 나온 계란을 쪄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었다.

@5.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끼를 다시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 중 음식만 한 것이 있을까 싶다. 마음 맞는 사람과 밥 한 끼를 나누는 것은 삶 그 자체일 수도 있다. 부모와 나를 이어줬던 그 무수한 시간을 돌이켜보면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었던 순간들이 가장 많이 기억에 남는다. 나와 형제를 연결하는 가장 튼튼한 다리 역시 밥 한 끼였다. 그리고 수많은 친구들과 정을 나눌 때도 어김없이 우리는 밥상에 둘러앉아 같이 한 끼를 공유했다. 오랜만에 만났을 때도 우리는 밥에 관한 추억을 꺼냈다.

@6. 한 끼니 공부하기


한 끼에 대한 정의는 있지만, 한 끼를 구성하는 형식과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국가마다, 민족마다, 마을마다, 동네마다, 가족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 한 끼는 사람들의 목숨줄이었던 시절부터 한 때의 사치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은 너무나 넓다. 한 끼를 공부한다는 것은 앎의 영역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미지의 영역을 알아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한 끼 앞에서는 누구나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한 끼를 만들기 위한 식재료를 만든 사람들, 식재료를 옮겨주는 사람들, 식재료를 다듬어 한 끼를 완성하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어디 하나 쉬운 점이 없다. 그중에서도 각 가정의 한 끼를 지켜온 인류의 어머님들의 수고로움에 존경과 위로를 드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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