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국밥이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겠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적어도 여름 한 낯의 더위를 확실히 잊게 해주는 맛있는 국밥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오랜만에 부산에 내려왔다. 왜 내려간다는 표현을 쓰는지 알 수 없지만 하여간 내려왔다. 1985년 고등학교 2학년 때 모든 대학들이 위대해 보일 때 부산대학을 구경삼아 방문했다. 언덕에 자리 잡은 커다란 건물들과 아늑한 교정이라 생각했던 건 순전히 고등학생으로서 하루빨리 저 지역으로 탈출하고픈 마음이 커서 위대해 보였던 것 같다. 2005년 부산대학과 산학협력 프로그램을 구상하려 무작정 방문했었다. 그렇게 2006년 델타벨트라는 의기투합 그림을 만들게 되었다. 부산과의 인연은 보통인연이 아니다. 그때 부산대와 인하대, 고려대가 그림을 그릴 때 인하대 후배가 나에게 권한 음식이 돼지국밥이다.
원래 육류를 잘 먹지 못하다가 겨우 조금씩 먹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돼지국밥의 돼지냄새가 싫기도 하고 다양한 부위의 고기들이 섞여 있어 보기에도 그렇게 마뜩지 않았다. 그러나, 국물을 한 술 떠서 먹어보니 완전히 다른 느낌이 들었다. 시원한 해장국은 아니지만 육수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 느낌을 잊을 수 없다. 그 뒤에도 종종 부산에 오면 되지국밥을 먹었다. 특히 부산역 앞에 있는 본전 돼지국밥은 부추를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자주 찾았다. 열차에서 내린 시간이 11시 55분, 아직 배고프지 않다. 배고프지 않으면 배고플 때까지 기다려서 끼니를 해결한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배가 고파야 음식이 맛있기 때문이다. 식객에도 등장했던 대사 ’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배고플 때 먹는 음식‘
부산대역에 내렸다. 아스팔트를 녹일 듯이 더운 여름날의 한가운데에 와있는 느낌이다. 여전히 시장기는 찾아오지 않았다. 끼니를 거르기에는 애매한 상황이다. 2시부터 5시까지 회의가 진행될 예정인 관계로 거르면 안 된다. 아무 생각 없이 부산대 정문 쪽을 향해 걸었다. 그러다가 앞서 검색했던 부산대맛집중 돼지국밥집이 생각났다. 완전히 반대방향인데 더운 열기 때문에 잠시 망설이다가 그 방향으로 걸었다. 큰길을 두 개 건너고 평범한 간판에 조그마한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메뉴는 일반과 청화 등이 있었다. 청화로 주문을 했다. 가브리살과 항정살은 국이 아니라 늘 불판에서만 마주쳤다.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옆테이블에 놓여있던 다진 양념 그릇을 살펴본다. 구수한 맛, 깔끔한 맛이라고 표시되어 있어서 뚜껑을 열어보니 구수한 맛은 된장이 살짝 가미된 빛깔이고 깔끔한 맛은 고춧가루가 적당해 보였다.
드디어 국이 나왔다. 한 모금 먹어보니 간이 안된 상태다. 내 마음대로 간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주인장께 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깔끔한 국물맛을 선호하는 나의 기호에 맞게 부추무침과 새우젓으로 간을 한다. 국에는 가브리살과 항정살이 수육의 느낌처럼 크기도 실하고 넉넉해 보였다. 부추무침을 비운 그릇에 다진 양념을 한 술씩 떠서 옮겨놓았다. 먼저 항정살을 구수한 맛 다진 양념에 찍어 먹었다. 고기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고소했다. 구수한 맛이 고기맛을 더 올려주었다. 이번에도 항정살을 한 점 건져서 깔끔한 맛 다진 양념을 찍어 먹었다. 약간 칼칼하면서 소금 간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말 그대로 깔끔한 맛이다.
나는 나만의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 그래서 음식을 먹을 때도 나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먹는 편이다. 다진 양념을 국물에 넣지 않고 고기를 찍어 먹으면서 속으로 중얼거린다. 아마 나처럼 먹는 사람은 이 가게 창립 이후 최초가 아닐까라고 말이다. 참 별 웃기는 생각을 다한다 싶으면서 국물을 떠서 먹는다. 먹을수록 진한 국물이 속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잘 차려진 음식은 약이다. 몸과 마음을 힐링시키는 약이다. 그러고 보면 오늘 또 하나의 명의를 만난 셈이다. 혼자 속으로 신난다. 내 음식자산 목록에 새로운 자산이 추가되었다. 가브리살 역시 부드럽고 잡내 없는 깔끔한 맛의 세계로 나를 안내한다. 잘 익은 깍두기를 먹으면서 나의 장에 서식하는 미생물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신 맛의 세계는 그 범위가 넓다. 40대가 되기 전까지 신맛 음식을 싫어했다. 나이가 들면서 뒤늦게 뛰어든 신맛의 세계, 깍두기에서부터 발사믹 식초에 이르기까지 모든 맛이 새롭다. 그 맛들의 최종 종착점은 장이 될 터인데, 이것들이 입맛도 돋우고 장 건강에도 좋으니 일석이조다. 통마늘과 깍두기 세 조각을 셀프코너에서 가져온다.
셀프 코너를 운영하는 이 지구상의 모든 음식점 사장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원가부담을 안고도 식재료를 흔쾌히 내어주는 넉넉한 배려심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국을 완전히 비우고 나니 응당 해야 할 일을 완벽하게 해낸 느낌이다. 깔끔하게 시장기를 해결한 기분을 더위에 뺏기지 않으려고 택시를 불렀다. 부산대학으로 가는 내내 오직 돼지국밥을 먹었던 기억과 맛을 음미하는 음식명상에 깊이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