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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Sep 17. 2023

남도 스타일의 집밥이 주는 아늑함

남도음식을 처음 만나게 된 게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맛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완도, 강진, 장흥, 구례, 목포 등을 다니며 다양한 음식을 먹었다. 한 번도 실망하지 않았다. 식재료가 자라는 환경이 건강하고 역사적으로도 음식문화를 가장 멋지게 꽃 피운 곳이어서 그렇다. 정보의 확산과 신속한 식재료의 공급망, 음식 전문가들의 확산으로 이제 우리는 지역과 상관없이 어느 곳에서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서울에서도 남도음식을 웬만큼 맛보았는데 오늘 새로운 곳으로 향한다. 음식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사람 간의 인연을 두텁게 만들며, 일상적인 시시콜콜함 속 위로가 되는 대화를 이어주기도 하고, 미래를 위한 생산적인 얘기를 나누도록 창의성을 북돋우기도 한다. 

예쁘게 꾸며놓은 베란다 화초들 사이로 된장과 고추장 단지가 이채로웠는데, 와우 조선 숙종 때 항아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안에 담긴 재료와 바깥공기를 이어주는 특성을 가진 옹기가 그동안 버텨온 세월의 무게를 가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 온 가게의 음식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간다. 가게의 밖과 안이 고루 아늑하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왠지 남도음식의 집밥을 먹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아주 싱겁지 않고 약간 간간하게 들깨탕은 입맛을 돋우고 음식을 먹을 준비를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들깨탕의 부드러움과 떡의 부드러움은 각기 다른 영역의 부드러움이되 음식이 갖는 속성 중 부드러움이라는 대륙에 같이 이웃하며 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대화도 중요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곧바로 음식들의 매력에 깊이깊이 빠지고 싶어 진다. 


물김치의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되었다. 그런 만큼 다양한 물김치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 물김치는 특별하다. 진한 샐러리향이 은은하게 배어있다. 약간 달콤한 맛은? 한라봉을 갈아 넣었다는 주인장의 설명에 화들짝 놀랜다. 혁신은 과학의 영역이나 기술과 엔지니어링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렇게 우리 일상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음식점에서도 매일매일 벌어지는 일이라는 생각에 가닿는다. 일행들에게 물김치를 홍보하며 대부분의 건더기를 먹을 즈음, 그릇을 가져와 물김치를 원샷한다. 시원하고 새콤 달콤한 물김치의 진액을 한 입 가득 부어 넣었다. 물론 리필이 목적이지만 물김치의 시원함을 제대로 느껴보기 위함이다. 오래 묵은 물김치가 장기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을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가 있겠는가?


반찬들 어느 것 하나 그냥 나온 것이 없고 재료의 특성과 맛을 잘 살려 골고루 맛을 보는 사이에 메인 요리를 제대로 맛보지 못할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보았지만, 이런 흥미로운 조합은 난생처음이라 그 맛에 깊이 집중하게 된다. 잘 익힌 된장의 진한 향을 옅게 오래 끓이며 우려내어 전복들을 아늑하게 감싸고, 심해에서 바다향기를 머금은 전복의 싱싱한 활력을 그대로 머금은 채 나를 응시하고 있다. 이 국물을 떠먹는 일을 멈출 수 없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팽이버섯과 쑥갓과 호박 등이 이 국물맛을 내는데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숟가락이 자동으로 계속 운동을 한다. 맛은 점점 더 깊어지고 그 깊이만큼 나는 아늑함 속으로 파고들어 간다. 맛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또 한 번 절감하게 된다. 제주의 전복돌솥밥, 완도의 전복볶음 요리 등 그동안 먹었던 전복요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만, 된장이 감싸고 있는 이 전복의 맛은 다른 차원임을 깨닫는다. 이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단연코 시그니처 메뉴라고 생각했다. 국물이 바닥을 드러내는 데 만족감과 동시에 진한 아쉬움이 교차한다. 

쫀득한 식감의 볼락과 독특한 향의 불고기에게도 할 말이 많다. 인간의 뇌는 주의 집중한 대상에 대한 기억은 또렷이 기억하지만, 그렇지 않은 대상에 대한 기억은 공중에 흩어져버린다. 차 키나 휴대전화를 찾느라 허비한 시간을 세어보면 어마어마할 것이다. 좋은 식재료를 사용했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는 음식을 먹고 난 뒤 속의 편안함인데, 그 편안함에서 다시 돌아와 대화에 집중한다. 음식이 불어넣는 활력으로 대화는 쉴 새 없이 이어지고 그동안 켜켜이 쌓였던 각자의 일상은 식탁 위에서 음식들에 질세라 서로 각축을 벌인다. 


잠깐 메뉴를 쳐다보다가 놀랬다. 한우, 전복, 옥돔을 넣은 김밥이라니!! 얼마 전 갓김치 김밥과 제주흑돼지 김밥을 먹으면서도 놀랬는데, 이 메뉴들은 그 차원을 넘어선다. 한 끼에 두 끼를 먹을 수 없는 공평함을 떠올리며 다음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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