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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Oct 14. 2020

베트남 다낭을 떠올리는 맛 - 분짜와 양지쌀국수

분짜는 왠지 발음상 우리가 익숙하게 먹던 음식 같은 착각이 든다. 오바마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평범한 사람들이 다니는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보았다. 보좌관들을 대동하고 으리으리한 식당에 가는 모습에 익숙해있던 터라 신기하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분짜라는 단어는 선명하게 기억 속에 새겨졌다. 어떤 모양인지도 몰랐다. 드디어 분짜를 먹을 기회가 생겼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 베트남 음식을 제공하는 가게가 다양하고 맛도 각기 다른 것 같다. 


오랜 시간 그곳을 지나치면서 언뜻 거기 뭐가 있을지 잘 모른다. 누군가가 그곳에 무엇이 있다고 말해주지 않으면 모른다. 사람들 간의 일도 마찬가지다. 대충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면 전혀 모르고 있음에 놀라게 된다.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그리고 알아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보는 불일치하고 우리들은 쉽게 불화하게 된다. 아 너무 나갔다. 소중한 것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등잔 밑을 잘 살피는 지혜가 분짜를 만나게 해 주었다. 


좋지 않은 무릎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소힘줄이 포함된 양지 쌀국수를 주문한다. 국물은 숙주를 넣어 시원하게 맛을 내는 쌀국수와 달리 약간 깊고 걸쭉한 맛의 육수에 얇고 넓은 면발과 양지와 소힘줄이 등장한다. 소스를 잘 활용하지 않는 편이라 주인장이 내어주신 대로 뭘 더하지 않고 그대로 먹는다. 육수는 걸쭉한 대신 쉽게 갈증을 덜어내준다. 돈코츠라멘을 먹을 때의 질감과 같되 양념의 자극이 없다. 


분짜는 기대했던 대로 맛있었다. 면을 소스에 담갔다가 꺼내 채소와 구운 돼지고기를 언저 한 잎 입에 넣는다. 소스의 맛 이어서 구운 돼지고기의 향, 그리고 이 둘을 잘 버무려주는 채소까지 뭐랄까 격을 갖추고 국수를 먹는 느낌이다. 고기와 국수는 잘 어울린다. 국수는 소스 안에서 탱글탱글한 몸을 만들어 내게 다가온다. 쌀국수의 면과 분짜의 면은 다르다. 다른 것이 같이 있어서 좋다. 다른 것이 같이 있어서 비교하게 되지 않는다. 쌀국수의 면과 분짜의 면은 각기 태어난 배경이 다르다. 각자의 사명도 다르다. 난 그들의 다른 면을 한껏 즐기면 그만이다. 


2019년 초에 베트남을 다녀왔다. 공항 기내식이 부실해서 같이 간 일행들이 식당을 찾아 헤매는 동안 허름한 쌀국수 가게를 얼른 들어갔다. 한국에서 먹던 베트남 쌀국수와 같은 맛은 찾기 어려웠다. 대개의 쌀국수들은 진한 고기육수와 독특한 향이 나는 채소가 있고 투박하게 썰어놓은 고기들이 양껏 담겨있다. 선뜻 뭘 시킬 건지 망설이다가 옆 테이블에서 먹고 있는 쌀국수가 그런대로 먹을만해 보여서 같은 것으로 주문했다. 한참 뒤에 가게로 들어온 일행들이 과감하게 다른 메뉴들을 주문할 때 우리는 맛있게 거의 다 먹고 난 후였다. 맥주 한잔 하러 다시 합석한 그들은 끝내 배고픔과 비 위상함 사이에서 갈등의 시간을 보내다가 절반도 먹지 못하고 나왔다고 한다. 그때 나는 이 가게를 떠올렸다. 베트남 쌀국수에 적응하게 해 준 맛의 연결지점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가격은 음식의 맛을 표현할 수 없다. 도심이나 주변이냐가 맛을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레시피에 관한 절대적 권위를 가진 사람이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레시피가 원재료의 맛을 뛰어넘을 수 없다. 음식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은 상상하는 이상일 때가 많다. 음식 한 그릇을 먹는다는 것은 허기를 채우는 동시에 그 지역사회가 가진 문화 혹은 사람들 간 연결된 인심을 간접적으로 느끼는 일이며, 편견이나 선입견을 단숨에 벗어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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