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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Oct 16. 2020

우연하게 발견한 맛 - 아! 좋다

우연히 발견한 식당에서 잊을 수 없는 맛의 세계를 발견하게 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런데 그렇게 발견한 맛은 평생을 나와 함께하게 된다. 음식에 관해서도 돈오돈수와 돈오점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 한 번에 음식 맛을 깨닫기도 하고, 자주 오래 다니면서 그 맛의 진가를 확인하기도 한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은 식재료를 다루고 사람들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철학이 있을 것이다. 음식을 먹는 사람도 각자의 음식에 대한 철학이 있을 것이다. 내게 음식은 맛에 대한 자각과 나 자신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리고 음식을 만든 이의 설계의도가 무엇인지를 늘 탐구하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새로운 음식을 발견하고 맛보고 즐기는 경험이 지속될수록 삶은 행복하다. 


우연히 추천해준 사람이 처음에는 장난을 치나 싶었다. 세상에 이렇게 솔직한 감탄사를 간판에 올리고 운영하는 곳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그리고 그 간판이 짐작하는 의미에는 다가갔으나, 정말로 그런지에 대해서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주문도 조심조심, 막상 상차림을 받았을 때도 반신반의했다. 국물 한 모금, 밥 한술, 반찬 한 젓가락을 뜨면서 나는 왜 이 사람들이 이렇게 멋진 간판을 달았는지 단박에 이해했다. 무릎을 치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맛있는 순간들을 보냈다. 바로 돈오돈수의 순간을 맞은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한계를 넘어선 곳에 멋진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덕분에 우리의 삶은 더 멋있는 곳으로 향한다. 


배추 된장국을 먹을 때 분명히 시원함을 느꼈다. 된장의 아늑함과 배추의 시원함이 어우러져 더 큰 시원함을 만들어낸다. 국 하나만으로도 입안은 아주 상쾌하다. 문득 제주도에서 전복돌솥밥을 먹었을 때가 생각났다. 성게 미역국이 국처럼 나왔다. 두 번도 아니고 세 번 같은 국을 달라고 했는데 미안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맛있었기 때문이다. 배추 된장국을 다시 리필해달라고 당당하게 부탁했다. 맛있다는 표현을 더 달라는 표현으로 하는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 표현하는 <시원하다>라는 표현은 언제 어디서 어떤 음식을 먹으면서 표현하는 가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제각기 다른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좀 더 작은 크기의 무수한 <시원하다>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운 여름날 시원한 아이스커피, 겨울 추운 날 따뜻한 국물 한 그릇 모두 <시원하다>라는 표현의 대상이다. 고로 맛의 세계에서 인간의 언어가 가진 표현의 한계를 굳이 넘어서려고 재주를 부릴 필요는 없다. 있는 그대로 표현하되, 그 의미는 행간에 깊숙이 묻어두는 것이 말하는 맛이라고 생각한다. 느낌이라는 우주의 광활한 영역을 그려본다. 그중에서 <시원하다>라는 행성이 보인다. 오늘도 나는 그 거대한 세계에서 나는 늘 헤맨다. 그리고 그 느낌의 세계는 우주가 팽창하듯이 점점 더 팽창해간다. 팽창할수록 나의 일상도 풍요롭다. 아 느낌이여! 맛이여! 


가격과 가치는 정비례하지 않는다. 아니 적어도 음식의 세계에서 가격과 가치는 전혀 별개의 영역이다. 가치는 가격 너머 거대한 대지와 푸른 해양이다. 내가 지금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느낌은 가격으로 매길 수 없다. 그리고 그 느낌을 주기 위해 음식을 만든 분들이 만들고 다듬고 열을 가한 그 정성 역시 가격을 매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격을 보고 주문을 할 수밖에 없다. 그게 우리 일상생활의 체계이자 약속이기 때문이다. 내가 음식을 먹으면서 느끼는 가치는 가격을 넘어선 곳에 도달한다. 가치를 알고 맛을 아는 영역이 늘어날수록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영역도 늘어난다.  


제육과 생선 정식을 섞어서 주문하기를 권하신다. 제육은 제육대로 제육의 세계를 보여주고, 생선구이는 생선구이대로 익혀서 나온 연한 살결을 있는 그대로 맛보기를 권한다. 둘 사이를 젓가락이 왔다 갔다 한다. 밭을 갈고 있는 농부의 일상처럼 젓가락은 이 둘 사이를 우선 왔다 갔다 한다. 곧이어 각각의 반찬이 거기에 있는 이유를 물어본다. 고소한 두부부침, 담백한 장아찌 무침, 매콤한 고추무침, 시원한(?) 숙주와 미역, 양념 간이 제대로 배어있는 오이, 호박나물과 나물무침 역시 꼼꼼한 사람 손길의 정성이 입안으로 전해진다. 우연한 발견이 주는 효과는 일상의 풍요로움으로 몸안에 전해진다. 그리고 나의 자산목록에 적어둔다. 그 근처에 갈 일이 있을 때 이 곳을 떠올리면 가는 발길이 한결 경쾌하고 가볍고 즐거울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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