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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Oct 20. 2020

항정살, 저녁노을 처럼 깊고 그윽한  맛

아버님을 편안한 곳에 수목장 이장을 하고 난 뒤라 홀가분한 마음으로 동생이 살고 있는 용문으로 돌아왔다. 오래간만에 삼 형제가 만나 두 동생들이 좋아하는 배드민턴을 같이 했다. 벌써 20년도 지나서 그런지 배드민턴 채를 잡는 게 익숙하지 않다. 체육관 시설이 잘되어 있고 동호회 분들이 따뜻하게 대해주어 어색함을 덜 수 있었다. 배드민턴 공을 라켓 한가운데 맞혀야 하고, 팔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손목을 이용해서 가볍게 스윙을 하며 팔은 자연스럽게 뻗어간다는 원리는 이해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았다. 한 시간 넘게 땀을 흘리고 동생이 그동안 잘 다녔던 곳을 소개해준다.


삼겹살에 익숙했던 터라 항정살은 낯설었다. 돼지 한 마리에서 200g 정도 공급되는 희소가치가 높은 부위이다. 갈매기살, 가브리살과 함께 돼지고기 최고의 부위로 취급된다. 살코기 사이에 촘촘히 박혀있는 마블링으로 인하여 담백하며 쫄깃하고 특유의 부드럽고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쇠고기의 '차돌박이'나 '양깃머리'를 합쳐 놓은 맛과 비슷하다. 항정살은 살코기에 촘촘히 박혀 있는 마블링이 천 개나 된다고 하여 '천겹살', '천 겹 차돌', '돈차돌'로도 불린다.(두산백과) 아마도 언제 어디인지는 모르겠는데 별로 맛이 없었던 기억이 장애물 역할을 해서 그런가 보다. 새로운 음식을 만나는 설렘을 안고 가게로 향했다. 토요일 오후 8시인데도 자리가 없다니.... 10여분을 기다려 자리를 잡았다.  아버님 수목장에 대해 알아봐 주신 동생 선배님이 합석했다. 배고픔과 고마운 마음을 음식 먹기 전에 펼쳐놓으니 음식 먹는 자리가 훈훈해진다.


불판이 달구어지고 다른 곳에 대한 주문을 소화하는 동안 기다리는 무료함을 소맥으로 달랜다. 주로 막걸리를 마시지 소맥은 거의 먹지 않았는데 다른 동생들과 동생이 소개해준 선배님의 취향을 고려하여 분위기를 맞추었다. 소주를 한잔 따르고 맥주를 가득 따라 마시던 방식에서 소주를 반잔 맥주를 반 컵 정도 채워 먹었었는데 지금은 그냥 소주 약간과 맥주 약간 해서 1/3 정도 따라서 마시는 것이 좋다. 한 모금에 털어 넣을 수 있어서 시원함과 잔을 비우는 느낌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내가 만든 방식이 인기가 있어 여덟 잔을 그렇게 마시는 동안 오늘의 주인공 항정살이 등장했다.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없었는데, 소고기 등심처럼 살과 살 사이에 기름이 촘촘히 박혀있다. 갈매기살과는 완전히 다른 모양이다. 분홍 빛깔이 고와서 침이 고인다. 달구어진 판에서 익히는 일은 손쉽다. 금방 익어서 한 점 먹어본다. 예전에는 소스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고기 자체의 맛과 가끔은 소금에 찍어 먹는 것으로도 고기 맛을 느낄 수 있었는데 소스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소스는 적은 양으로도 음식을 완전히 감싸고 그 음식이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고 입안의 미각 수용체와 어떻게 하면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아는 영리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소스는 가게 주인과 식재료 간 오랜 기간 호흡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에는 상추에 시큼하고 맛있는 김치와 콩나물, 파, 마늘과 된장을 얹고 여기에 항정살을 한 점 얹었다. 복합적인 맛 속에서도 항정살의 고소하고 담백한 맛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사실 항정살만 주문할 때 삼겹살을 1인분 주문한 이유는 항정살로 실망할 경우를 대비한 plan B였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말 그대로 맛있었다. 삼겹살의 멋쩍은 미소가 살 속에 보이는 듯했다. 이어서 소막창을 먹었다. 항정살의 깊은 여운이 기둥처럼 솟아있어서 감동은 오지 않았다. 밤이 깊어가고 술도 취해가고 음식을 앞에 놓고 펼치는 우리의 대화는 21층 높이만큼  쌓인다. 저 멀리 붉게 물들었던 저녁노을이 문득 눈앞에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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