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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Oct 12. 2020

시원하고 개운한 복지리


2016년 2월 어느 날 병원 진료를 위해 고향집에서 올라오시는 아버님을 청량리역으로 마중 나갔다. 폐질환으로 병원 진료를 위해 상경하셨는데 그날따라 더욱 야위어 보이셨다. 마침 점심 때라 복집으로 안내해드렸다. 사장님께서 복지리탕에 평소보다 더 많은 복어 애를 넣어주셨다. 한 참을 땀을 흘리면서 드시던 아버님 모습이 선하다. 다 드시고 나니 혈색이 훨씬 잘 돌고 좋아 보이셨다. 그동안 나는 이곳을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며 들렀다. 그중에서도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아프고 힘든 사람에게 음식은 약처럼 기능한다고 생각했다. 음식으로 치료가 되지 않는 병은 약으로도 치료되지 않는다는 옛 속담이 그냥 나온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해본다. 


한참 달궈진 불판 위에 먼저 양념으로 버무린 복어와 팽이버섯이 안착하고 뒤를 이어 미나리와 파, 쑥갓이 그 위에서 숨을 덮어버린다. 처음에는 잘 몰라, 복어가 다 타서 맛이 없지 않을까 하는 염려마저 들었었다. 그렇게 한 숨을 덜어낸 뒤 장 젓가락으로 휘휘 저으면 뻣뻣하던 채소들이 부드럽게 복어와 섞여 먹기 좋은 상태가 된다. 먼저, 미나리와 파를 먹고 뒤이어 복어를 팽이버섯과 같이 먹는다. 채소를 더 먹기 원하는 경우 더 리필해주신다. r가열된 불판위에서 복어는 약간씩 말라가니 촉촉한 맛을 쭈욱 유지하기 위해서는 바로 먹는 게 좋다.


복불고기를 어느 정도 먹을 무렵 복튀김이 나온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데, 촉촉한 느낌이 즙이 많은 상태가 아니어서 식감이 좋다. 젓가락은 어느새 복불고기와 튀김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채 썰어 볶은 감자는 아주 무르지 않고 약간은 아삭아삭한 맛이 있어 복불고기와 잘 어울린다.


복지리탕에 대해서는 앞서도 얘기했던 것처럼 원기를 돋우는 매력이 있다. 역시 미나리와 배추를 먼저 먹고 다음 순서로는 복어 애를 먹는다. 덩어리로 먹어도 맛있고, 그걸 으깨서 국물과 같이 먹을 경우 복어의 시원하고 부드러운 국물 맛을 배가시켜준다. 만약 그 전날 술을 마셨다면 숙취해소에 가장 적합한 음식을 만났다고 착각해도 될 만큼 시원하다. 알알이 흩어지는 복어 애는 나의 입맛을 돋워준 뒤 밑으로 이동해서 나의 애를 달래준다. 복어껍질은 쫀득하고 살은 부드럽다.


식사메뉴는 두 갈래로 나뉜다. 어느 길로 갈 것인지는 취향에 따라 다르다. 다만, 배가 부르지 않다면 두 갈래 길 모두 가는 것도 추천한다. 복불고기 양념과 약간 남은 야채에 밥과 김, 참기름을 올려 불판에 볶아놓은 볶음밥은 촉촉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당연히 과식을 부른다. 그리고 복죽은 한 사람이 먹을 만큼 작은 사이즈가 나온다. 물론 큰 사이즈는 별도 주문해야 하지만, 이미 불고기와 지리를 먹은 상태라면 작은 죽을 추천 한다. 간간히 복어살이 섞여 있고 죽 본연의 부드러움을 만끽할 수 있다.


근처에 찾아오는 손님이나 귀한 분을 대접하고 싶을 때 찾는데, 거의 100% 만족하는 모습을 보면서 은근히 동네 자산에 대한 자부심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맛있는 음식을 내가 먹는 것도 좋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그 음식을 공유하는 것, 혹은 내가 알아갈 사람이 그 음식을 공유하는 것은 살아가면서 맛볼 수 있는 일상의 자잘한 즐거움 중 제법 큰 위치를 차지한다고 생각된다. 물론 가족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맛있는 음식을 알게 되면 공유해야 할 사람들을 떠올리는 나의 습관은 점점 깊고 넓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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