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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Sep 26. 2020

근사한 도시락

맛은 느끼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느냐가 만드는 사람이 어떻게 만드느냐 만큼 중요하다. 어떤 태도로 음식을 받아들이고 어떤 맛을 느낄 수 있는 가 하는 것은 보편성이 닿을 수 없는 개별적 영역에 속한다. 여기에는 그러니까 압도적인 몇 개의 권위적인 의견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구수와 비례하는 맛의 느낌과 견해가 있다는 얘기다. 맛은 그러므로 아무나 느끼고 평가하고 글을 적을 수 있다. 어쩌면 그 권위적인 해석이 오히려 오류를 범할 수도 있음을 평민들께서는 나와 같이 많이 먹고 써주시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응원한다.


언제인가 배달 도시락을 먹는데 국과 밥은 식어있고 반찬은 딱딱해서 여러번 절반정도 먹다가 중단한 경험이 있었다. 괜찮은 도시락을 만난 적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도시락도 잘만 만들면 충분히 따뜻함과 맛을 느낄 수 있게 구현할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코로나로 대면 회의 대신 온라인 회의를 하기전에 각자 일하는 사무실에서 도시락을 먹게되었다. 아 그런데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도시락을 먹고 자랐음을 깨닫게 된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오후 수업까지 하게되면서 어머님이 싸주시던 도시락을 늘 먹었다. 도시락이라고 해봐야 금속 사각통에 밥과 어떠다 한번 계란후라이가 올라가면 최상의 음식이다. 그리고 구석에 멸치와 오뎅 등 반찬 2-3가지였다. 아 ! 겨울이 오면 볶음김치를 얹어 주셨다. 교실 한 가운데 난로위에는 저마다 싸온 금속 도시락을 올려놓았다. 따뜻한 밥을 먹는 원시적이지만 최상의 방법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데워진 그 도시락을 위아래로 좌우로 흔들면 맛있는 김치볶음밥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등장한 보온도시락은 따뜻한 밥과 국을 먹게 해주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 고마운 일이었다. 


오늘 나는 별다른 기대없이 도시락 두껑을 열었다. 도시락에서 쉽게 구현하기 어려운 것이 밥과 국의 온도다.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좋지만 그 뜨거움의 정도가 곧바로 해 올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그 적당한 온도를 구현하는 것은 도시락의 숙제다. 이 집은 그 숙제를 아주 훌륭하게 해왔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반찬들의 사정은 밥과 국만큼 절박하지는 않다. 반찬은 맛있으면 온도는 별로 문제 되지 않는다.


소고기 뭇국은 압도적이다. 소고기 뭇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고기를 사용해야만 일정한 깊이에 도달할 수 있다. 기름기가 너무 많으면 기름이 둥둥 떠 숟가락이 쉽게 가지 않는다. 너무 옅으면 감칠맛과 담백한 느낌을 주지 못한다. 이 둘이 성립하려면, 재료가 좋아야 하고 적당한 온도에서 적당한 시간에 고기를 우려내야 한다. 무는 어릴 적 뒷마당에 묻어놓고 추운 겨울이 오면 하나씩 꺼내먹던 그 달디 단 무가 그리워지는 맛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고기 뭇국은 속을 편안하게 해 주고 장내 미생물에 충분히 영양을 공급할 수 있어서 속 편한 음식의 대표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계란말이는 깔끔하고 정갈하게 보일 것과 입안에서 전해지는 식감이 부드러워야 한다는 내 나름대로의 요구조건을 충족하고도 남았다. 보쌈과 보쌈 무김치, 그리고 새로운 조합으로서의 명란 몇 알이 입안으로 들어와 육류와 해물의 이상적인 조합을 가능하게 했다. 명란은 돼지고기의 아련한 비린맛의 느낌을 단호하게 결별하게 해 주었다. 새우는 튀김옷이 튀긴 상태에서 얼마간 머물 수 있도록 약간 달달한 양념으로 감싸서 새우와 튀김옷과 양념을 고루 느낄 수 있었다. 고추잡채에는 가늘게 썰어 넣은 고기 그리고 채소와 간장이 배어있는 당면은 그 자체로서 밥이자 반찬의 이중적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양상추와 건포도, 치커리와 복숭아가 잘 어우러진 샐러드는 치즈와 올리브가 포함된 소스 안에서 포근하게 감싸인다. 사과주스와 같이 올라온 호두가 가운데 문장처럼 박힌 쿠키 그리고 크림이 살짝 올라간 플레인 머핀은 달콤한 마무리를 원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정도 도시락이라면 5시간 정도 비행하는 비행기의 기내식으로 서빙된다면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지르지 않을까라고 상상해봤다. 멸치볶음은 밥 진도가 상대적으로 느리되 탄수화물을 다 드실 분들을 위한 배려로 보인다.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도시락 수요도 같이 늘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한 끼 때우는 개념이 아니라, 도시락 하나로 바다와 육지를 넘나들며 완벽한 여행을 할 수 있음을 맛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종이상자는 도시락을 들고 와서 먹고 버리는 환경에 대한 내 마음의 부담을 훨씬 덜어주었다. 코로나가 장기화된다면 모든 국민이 지속적으로 사용 가능한 도시락 용기를 각자 갖추고 식재료 공급업체는 그 도시락 용기에 음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조금 더 번거롭기만 하다면 좋겠다는 혼자만의 상상을 해보았다. 아마도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리고 환경에 대한 부채의식이 여전히 뒷덜미를 긁고 있음을 알기에. 아쉬운 점은 이런 멋진 도시락을 먹으려면 20명분 이상 주문해야 된다고 하니 자주 접하지는 못할 것 같다.


코로나 상황이 길어지고 있다. 처음에 중국 우한에서 입국한 교민들을 단체 수용시설에 모실 때에도 그들을 위로한 것은 한 끼니의 도시락이었다. 코로나가 종식되기 전까지 도시락은 이전보다 더 많이 우리 삶속으로 들어올 것같다. 도시락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노하우가 개발되어 환경에는 영향을 덜미치면서도 따뜻함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도시락들이 많이 많이 사람들의 삶을 위로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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