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늘 분부순환도로로 올라가는 길은 항상 험난하다. 줄지어 기다리는 차량들 사이를 비집고 우회전해야 하는 곳까지 오니 숨이 턱 막힌다. 그런데 직진하던 차량 한 대가 순순히 양보모드로 전환했다. 앞 차는 좋겠다고 하고 순서를 기다리려는 순간 그 차량이 한번 더 양보 모드로 기다린다. 아이고 이게 웬 횡재인가 하고 우회전을 하고 막 차를 바로 세우는 바로 그 순간!!
왼쪽에서 끼어들기하려는 차량이 내 바로 옆에 바짝 차를 붙였다. 그런데 창문이 열려있고 뭐라고 크게 고함치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 옆을 보니 운전자가 뭔가 욕설을 하는 것 같았다. 왼쪽은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곳인데 왜 욕설을 하고 소리를 지르는지 의아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본인의 화를 참지 못한 운전자가 팔뚝질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나에게 팔뚝질을 하는 것 같았는데….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얼핏 봐서 연세가 60은 족히 넘어 보이시는 것 같은데, 팔뚝질은 야무지고 찰지다. 이번 한 번만 한 솜씨는 아닌 듯하다. 그 순간 나는 이해당사자가 아니라 관찰자 모드로 전환했다. 왜냐하면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했거나 아니면 내가 들어가지 말아야 될 차선에 들어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자기가 들어갈라고 하는데 자기 마음대로 안 됐다고 하는 건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 현재 시점 이런 상황에서의 팔뚝질은 지금 창조된 것은 아닐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저 사람의 내면을 형성해 온 에너지의 표출일 것이리라.
상대방이 화나게 했는데 내가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것 또한 공자가 말한 인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평소 생각해 왔던 터라, 창문을 내리지 않고 씩 웃으면서 “도대체 뭐라는 거야 이 자식아”정도를 읊조리며 빤히 그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다시는 옆을 보지 않았다. 언어 습관과 행동 습관이 형성되어 온 내력을 생각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내가 에너지를 거기에 쏟아야 할 이유도 없고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팔뚝질을 당한 것이 기분 좋을 리는 없다.
그 순간 나의 반응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어땠을까? 그러고 보니 1994년부터 서울에서 운전을 하며, 여러 번 끼어들기 관련 시비를 했다. 때로는 정당하게 때로는 부당하게 때로는 억지스럽게.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내가 반응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인내심이 쌓인 것도 있을 테고, 최근 근력운동을 하면서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 측면도 있고, 이런 일들이 내 마음속의 평화와 안식을 방해할 가능성에 대해 깊이 우려했을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 보면 차를 운전할 수 있는 기능에 대해 운전면허라는 자격증을 따야 하는 과정은 있지만, 운전 예절에 대해서는 별도로 교육을 받았는가 생각해 보면 별다른 프로그램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알지 못하는 교육프로그램이 있을 수도 있으니 단정 지어 생각하지는 않으련다. 차는 고속으로 움직이고 엄청난 중량을 보유하고 있어서 위험한 물건이다. 이것을 기술적으로 다루는 일도 중요하지만, 감정의 영역과 다툼의 영역에서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 잘못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사소한 접촉사고로도 큰일이 벌어질 수 있다.
아주 오래전 장인어른께서 백내장 수술을 받기 위해 순천향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바로 옆 병상에 누워 계신 분이 생각났다. 국제적 사업가였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이었다. 시속 5킬로미터로 블랙 아이스 길을 가다가 살짝 미끄러졌는데 하반신 마비가 와서 석 달째 입원해 계셨다. 차는 정말 위험하다.
운전 예절의 중심은 양보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이건 교육을 받아야 한다. 자주 양보하지 않는 습관에 길들여진 나의 모습들도 되돌아보게 된다. 쌉싸름하고 시금 털털한 기분이었다가 다시 평안 모드로 전환되었다. 좀 더 조심스러워졌다. 누군가 깜빡이를 켜자 쉽게 양보하면서 퇴근길 프로젝트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