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점심을 가볍게 먹을 요량으로 감자와 고구마를 삶았다. 흙먼지가 없도록 씻어 낸다. 고구마는 잘 씻겨지는데, 감자는 흙이 잘 씻겨 나가지 않는다. 아마도 감자와 함께 지내왔던 흙들이 헤어지기 싫어서 그런 모양이라 대충 씻고 찜기에 올려놓는다. 한 줌의 흙속에는 수백만 마리의 미생물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흙속 미생물들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자란 감자와 유기적으로 교감했던 흙들이 감자와 헤어지기 싫어서 이렇게 붙어 왔으리라. 고구마에는 흙도 별로 없고, 금방 씻겨나간다.
흙속에는 세균, 곰팡이, 원생동물, 바이러스 등이 포함되어 흙의 건강과 생태계 유지에 기여한다. 우리 몸의 장내 미생물은 수십조 개 이상에 달하며, 소화, 영양 흡수, 면역체계 조절에 관여한다. 흙속 미생물은 토양 구조와 영양 순환 등 생태계를 조절하는데 기여하며, 장내 미생물은 우리 몸 생태계를 조절하는데 기여한다.
감자는 잘 배수되는 사질양토(모래와 점토가 혼합된 토양), 뿌리의 영양흡수를 촉진하는 유기물이 풍부한 흙에서 잘 자란다. 고구마도 양토나 사질토에서 잘 자란다. 고구마는 따뜻한 기후를 선호하며, 토양 온도가 21~26°C일 때 가장 잘 자란다. 감자와 고구마는 흙속에서 자라는 동안 흙의 물리적 구조를 변화시켜 공기와 물이 흘러가는 경로를 형성한다. 감자와 고구마를 재배한 후, 유기물 찌꺼기가 남아 토양 비옥도를 높일 수 있다. 감자는 척박한 흙에서도 자라는 생명력을 상징한다. 고구마는 땅속 깊이 자라는 특성 때문에 겸손과 풍요를 상징한다.
감자의 혈당지수는 70-90 사이, 고구마는 45-55인데, 조리방법에 따라 다르다. 찌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감자에는 비타민C와 위점막 보호 성분이, 고구마에는 베타카로틴과 폴리페놀 등의 항산화 성분이 몸의 염증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뜨거운 증기가 조금씩 피어오른다. 거실 전체에 감자와 고구마의 진한 향기가 뒤덮는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냄새를 통해 온몸을 자극하는 강렬한 힘이 있다. 그들이 자랐을 땅속 기운과 땅 위의 들판을 상상한다. 들판을 스쳐갔을 바람, 빗줄기들, 따뜻한 햇살이 걷혀갔을 시간들을 상상한다. 씨감자나 줄기에서 출발하여 내 눈앞에 존재감을 드러낼 정도로 자랄 동안의 과정을 영상으로 찍는다면 대하드라마가 될 것이다.
단단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기까지의 과정을 생략한 채, 결과로써의 감자와 고구마를 사서 너무 손쉽게 그 과실을 향유하려고 하는 건 아닌가? 그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내민 농부의 손길과 수고롭게 수확한 손길, 여기까지 오게 된 수고로운 손길들을 떠올려본다. 허투루 대할 수 없을 고구마와 감자들이 익어가는 과정에 더 집중한다. 젓가락으로 찔러 익힘 정도를 느끼며 먼저 익은 것들을 꺼낸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익은 감자와 고구마를 칼로 반을 잘랐다. 아직 덜 익은 것들은 좀 더 익히도록 다시 뚜껑을 덮었다.
국립과천과학관 입구에 세워진 식물세포와 동물세포의 커다란 모형이 생각났다. 이 단면들에서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감자와 고구마의 세포의 존재를 확인할 수는 없다. 감자와 고구마 세포의 구조와 내 몸을 구성하는 동물 세포의 구조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식물 세포들이 내 몸속에 들어가면 거기 세포벽에 있던 수분들이 내 몸속 세포에도 전달될 것이다. 나는 그 수분을 먹어 내 몸속의 수분량을 늘리고 세포벽이 단단하게 그 수분을 받아 더 촉촉해질 것이다.
감자의 뽀얀 속살, 고구마의 노릇노릇한 속살이 내 입안을 자극한다. 입에 침이 고이고 거기 뒤섞인 아밀라아제들이 저 음식들을 맡기 위한 준비를 한다. 이 준비하는 과정이 소화 흡수 과정을 원활하게 할 것이다. 이 과정이 생략된 채, 내어준 음식을 먹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뿐만 아니라 평온한 마음마저 든다. 그건 부수적인 개이득이다. 거실 한가득 퍼지는 달콤한 고구마와 구수함과 고소함 사이의 경계 지점에 있는 감자의 향과 맛, 전분의 촉촉한 질감, 입안에 스미는 따스함에 잠시 겨울 추위를 잊는다.
어릴 적 태백에서 먹었던 수많은 찐 감자들 중 일부가 뇌 한쪽 깊은 곳에 저장된 기억으로 소환되어 여기 온다. 와있다. <지금 여기>에서 음식 맛을 본다는 것과 <아까 거기>에서 음식 맛을 봤던 기억을 소환한다는 것이 나란히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때 감자를 나눠먹던 돌아가신 아버님과 연로하신 어머님, 모두 50대를 넘긴 둘째 동생과 막내 동생의 어릴 적 감자 먹던 모습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며칠 전 한 강연에서 1년에 100점짜리 행복 하나를 느끼는 것보다는 10점짜리 행복을 10개 느끼는 게 훨씬 행복하다고 김경일 교수가 말했었다. 매일 일상 속에서 10점짜리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 행복의 효능감은 얼마나 클 것인가? 매일매일 건져 올릴 행복감이 곧 사라지겠지만, 곧바로 다음 행복감과의 계주 속에 일 년 열두 달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처럼 감자와 고구마를 찌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