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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안에 갇혔을 때.... 헐! 도가니탕!

by 새로나무
XL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새로운 나를 만난다. 어제와 다른 몸의 상태를 어제와 비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어제의 세포 상태와 오늘의 세포상태를 내가 알 길이 없다. 다만 기분과 느낌으로 그것을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안토니오 디마지오의 <느끼고 아는 존재 -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진화했을까?>를 다 읽었지만 그 느낌의 폭과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전혀 가늠할 수 없다. 항상성과 관련하여 느낌과 기분이 항상성을 지켜줄 가능성이 있음을 알게 된 것만 해도 큰 수확이지만 그분의 메시지를 찾아 좀 더 들어가 보고 싶다. 처음 가보는 가게에 대한 설렘은 언제나 즐겁다. 30여 년의 직장생활을 뒤로하고 은퇴하시는 선배님을 모시는 자리.

예전에는 국수를 보면 금세 입안에 침이 고이고, 몸이 반응을 했었다. 요즘 흰 밀가루로 만든 음식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새해부터 큰 조직의 팀을 겸직으로 맡아 부담스러워하던 차라 “독 안에 든 상황이라 나는 도가니를 먹겠다”라고 했다. 팀원들은 웃는 몇 사람과 다수의 시무룩한 사람으로 나뉘었다. 누군가의 반응을 보고 개그를 하기보다는 딱딱한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바꾸어 보려는 작은 노력이라고 혼자 자부하면서 그 순간을 넘긴다.


계란과 밀가루를 섞어 옷을 입힌 생선 전은 방금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이력을 더듬어 보게 된다. 언제부터 시작된 솜씨일까? 어떤 시행착오를 거쳤을까? 좋았던 시절과 그렇지 않았던 시절을 두루 거쳐 지금 내 앞에 놓인 이 음식은 지금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속에 수많은 이력을 간직하고 있어서 그 의미가 만만치 않다. 한 점 입에 물고 동태 전의 본질에 관해 물어본다. 촉촉할 것, 생선살의 느낌이 살아 있을 것, 튀김옷과 비껴서지 않고 한 곳을 바라보고 있을 것, 옅은 맛의 간장과 조화를 이룰 것.... 가게마다 각기 다른 스타일이 있듯이 이 가게의 생선 전 역시 독특하다. 맛있다고만 하기에는 살펴볼 것들이 많아서 즐겁다.

재료를 아끼지 않은 주인장의 인심이 도가니탕에 가득하다. 부드럽고 쫀득하지만, 이에 달라붙지 않는 식감을 만들어 내기 위한 노력의 깊이를 가늠해 본다. 훌륭한 음식을 맛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행착오가 뒤따른다. 너무 부드러워서 적당한 식감에서 멀어지거나 너무 딱딱해서 먹기를 주저하기 되는 경우를 겪고 나면 적당한 부드러움과 적당한 식감의 깊이가 어디쯤인지 가늠이 된다. 그 기억을 여기로 불러 이 음식을 마주하면서 만족감을 끌어올린다.


입안의 미각수용체들도 덩달아 반응한다. 내 오른쪽 무릎 손상된 부분 어딘가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맛을 끌어올린다. 국물은 칼국수의 국물과 동일하다. 칼국수의 양념과 채 썬 호박을 눈으로 보아도 맛볼 수 있다. 상상의 세계는 보기보다 현실감이 있다. 내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는 게 아니라는 뇌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음식을 먹을 때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즐거움에 한 발 더 다가서는 길이다. 그 상상력이 입안과 뇌를 자극하면서 음식의 맛에 비로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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