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지 21년 차, 그동안 자주 접했던 간판이고, 다른 지역에서도 볼 수 있었던 간판인데, 처음 방문하게 된다. 가까운 해장국집을 자주 다녔지만, 검토 대상에서 제외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그렇다고 추어탕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만약 이유가 있다면, 아마 간판 옆에 붙어있는 인물사진일 것이다. 이 가게 설립 또는 운영 관련 핵심인사임이 분명할 터인데 왠지 부담스럽게 느껴져서다. 이 가게만이 아니라, 인물사진이 있는 가게는 잘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새로운 가게나 새로운 음식을 접할 때 평균적인 기대치가 있다. 유사한 음식 또는 같은 종류의 음식을 먹은 것에 대한 경험을 기억 속에서 인출해 내서 그 기대치를 밥상 위에 올려놓고 비교하고픈 얄팍한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추어탕과 생선구이를 주문한다. 단품은 가격이 적당해서 고등어와 임연수어를 주문했다. 겉절이는 특유의 신선함과 아삭함을 간직하고 있었고, 깍두기는 무가 머금고 있던 소금에 절인 시간들과 염도, 아삭함의 정도와 숙성의 정도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기대치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셀프코너에 가보니, 좋아하는 열무김치, 생부추와 양배추 샐러드 펼쳐져 있어 흐뭇한 마음이 든다. 음식인심이 좋아야 음식점이 잘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터라 주인장이 누군지 모르지만 제대로 가게를 운영하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추어탕 국물은 걸쭉했다. 재료를 아끼지 않았다. 들깨를 듬뿍 넣고 후춧가루를 뿌리고 생부추를 깊이 넣어 숨이 죽기를 기다린다. 아주 오래전 보문동 남원추어탕이 생각나는 맛이다. 처음 추어탕을 접했던 곳인데, 한옥 가운데 마당이 낭만적이었던 곳이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겼는지 알 길이 없다. 오래전 맛을 소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감정을 누릴 수 있었다.
강황솥밥의 노란색과 짠 득한 밥의 질감을 다른 그릇에 옮기는 숟가락 끝으로 확인하고 나니, 아무리 흰쌀밥이지만 먹고 싶은 충동을 누를 길이 없다. 채소-단백질-탄수화물의 순서를 가끔은 어겨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한 술 떠 넣는다. 예상했던 짠 득한 밥 내, 정겨운 내음이 입안 가득 퍼지며 모든 경계심을 내려놓고 오직 추어탕과 밥에 집중한다.
추위가 한 풀꺽인 시점이라 추어탕 국물의 빛이 바랠 만도 하지만, 계절을 떠나 국물은 삶에 위안이 되고, 일상을 살아갈 기운을 불어넣는 힘이다. 늘 되새기는 대사 “백성들의 국물은 깊고 따스했다”라는 <칼의 노래> 김훈 선생의 그 촉촉한 대사를 떠올리게 된다. 그저 국 한 그릇 먹으러 들렀다가 진수성찬을 받아 든 느낌이다.
고등어구이와 임연수어 구이도 화로에 구워서 그런지, 타지 않고 생선살의 깊은 곳까지 잘 익어서 맛있었다. 생선살의 옅은 비린내와 실속 심해의 바다 기운을 느끼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생선을 굽는 일이 번거롭고 냄새가 잘 지워지지 않아 자주 조우하지 못한 아쉬움을 마음껏 달래 본다.
추어탕을 완전히 비우고, 구수한 숭늉을 먹고 나서도 강황밥에 대한 아쉬움에 젓가락으로 조금씩 집어 올려 겉절이, 깍두기와 씹어 먹는다. 밥알 한 알 한 알의 짠 득한 질감이 계속 입안을 맴돈다. 그 질감과 밥내음은 집으로 오는 길에도 계속되었다. 입안에 음식의 잔상이 머무는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감각속에서 혹은 기억속에서 맴도는 잔상은 모든 것에 명확하기를 요구하는 현실의 무리함에 가둘 수 없는 경계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