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에서 사흘째 되는 날이다. 상쾌한 가을바람이 빰을 스친다. 어제 왔던 길이라 한결 친숙하다. 먼 옛날 일반 백성들은 들어가기 힘들었던 곳, 이곳을 드나들던 사람들도 신분에 따라 입장하는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달랐을 터. 우리처럼 자유롭게 드나드는 사람들은 왕족이나 귀족이 아니었을까? 머나먼 길을 돌고 돌아 이곳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자유롭지는 못해도, 아무 거리낌 없이 드나들 수 있다는 자유로움은 지금 여기 내가 이곳에 서있음을 즐겁게 느끼게 해 준다. 상궁을 바라보는 연못의 잔잔한 물결에 햇살이 반짝거리며 튕겨나가는 지점을 바라본다. 진초록과 옅은 갈색의 조합이 선명하여 발걸음을 쉽게 옮기지 못한다.
헐!!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가는 길에 Falco의 사진이 걸려있고 그의 이름으로 된 식당을 만났다. 1985년 고등학생 때 "Rock Me Amadeus"를 들었으나, 당시에는 다른 뉴웨이브 가수나 밴드에 심취해 있어서 주목하지 못했다. 한참 직장생활이 힘들 시기에인 1998년 그의 노래 "Out of the Dark"을 들었다. In to the light로 이어지는 가사가 너무 좋았다. 나도 언젠가는 어둠 속에서 나와 빛으로 향하게 되리라는 주문을 외우면서..... 독일어의 강한 악센트로 듣는 랩은 매력적이었으며, 절정의 보컬과 사운드는 시원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의 랩은 중독성이 아주 강했다.
이 노래를 들으며, 과거 그의 노래들을 다시 좋아하게 되었다. 전성기를 지나서도 꾸준히 자신의 음악세계를 만들며 세련미를 더해가고 있다고 좋아할 무렵 같은 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다. 잘생긴 귀공자 스타일에 파격적인 사운드로 매력만점인 사나이!! 그를 추억하는 식당이 여기 있어서 비엔나에 감사했다. 잠시 그의 음악을 돌아보고 과거를 돌아볼 기회를 줘서.
호텔 조식을 일부러 첫날만 샀던 이유는 느긋하고 가벼운 아점을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조식과 점심과 저녁을 꼬박꼬박 챙겨 먹어서, 귀국 후 과식을 한탄했던 과거와 달리 가볍게 가볍게 즐기는 영역으로 넘어간다. 가벼운 음식 속에서 맛을 추구하면 가짓수가 다양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먹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지금 여기 있는 음식과 맛에 집중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
조그만 카페 창너머 가벼운 메뉴들과 커피가 왠지 맛있을 거 같아 들렀다. 가볍게 식사하는 즐거움을 만끽해서 좋았지만, 진한 커피를 연하게 타서 먹으려고 뜨거운 물을 달라고 했는데 추가 차지를 해서 약간 섭섭했다. 문화가 다르다고 이해하고 섭섭한 기분은 얼른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가슴속에 간직하면 나만 바보가 된다. 첫 번째 화살은 남이 날릴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쏘는 첫 번째 화살이 더 많지만, 예전에는 남이 쏘는 화살이 더 많다고 착각했다. 절대 두 번째 화살을 나에게 쏘지 않는다. 얼른 털어버리고, 그 빈 곳에 새로운 즐거움과 행복으로 채운다!!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을 향해 길을 재촉한다. 어떤 모험을 하게 될지 어떤 감동을 먹게 될지, 누구의 그림이나 예술작품에 반하게 될지는 가보기 전에는 모른다. 한번 가봤던 곳이라고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작품이라도 다시 감상할 때 느낌이 달라진다. 나의 정서와 시간의 흐름이 깊이 개입되어 있어서 언제나 예술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향해 열린 창이기 때문이다. 회화를 특히 좋아하게 된 이유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고 예술가가 던진 수많은 화두들을 이루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나만의 방식으로 그들과 만날 설렘을 가슴속에 가득 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