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런던의 대영박물관을 관람할 당시 문화적인 소양과 역사 정보가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대영 박물관을 구성하는 많은 전시물들이 약탈해 온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의 눈길로 쳐다보다 보니 본질을 놓치고 말았다. 며칠 전 루브르 박물관을 관람했을 때와는 다른 이중적 잣대를 들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미술사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이집트와 그리스 전시물들을 같은 시각으로 보려다가 그냥 있는 그대로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문을 열고 들어간다.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사람과 세상, 그리고 사물을 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과 던져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 그리고 편견과 선입견을 애써 벗어던지느라 수고하지 말고 그냥 관람하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들이 중첩된다.
짤막한 제목과 설명, 그리고 수많은 작품들을 보며 일일이 보기보다는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세월의 무게와 어떤 공간에 있었던 작품들 일지를 상상해 보는 직관에 좀 더 의존해 보기로 했다. 우선,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색감과 질감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놀라웠다. 항아리 혹은 그릇으로 보이는 물건들에는 사람의 형상과 동물의 형상이 같이 새겨져 있다. 사람과 대등한 위치의 동물이거나 혹은 동물의 상위 개념으로서의 토템을 숭배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토테미즘(Totemism)은 특정 종족이나 부족이 특정 동물, 식물, 또는 자연물과 영적인 연관을 맺는 신념 체계인데, 이집트에서는 동물들이 신성한 존재로 여겨져 신격화되었다. 예를 들어, 매는 하늘의 신 호루스(Horus)와 연관되었고, 고양이는 가정과 생명의 여신 바스테트(Bastet)와 관련이 있다. 특히 이집트에서는 동물 형태의 신이 나 인간-동물 혼합 형상의 조각과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작품들과 연관성을 떠올려본다.
애니미즘(Animism)은 자연계의 모든 사물이 영혼이나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인데, 이집트인들은 강, 태양, 하늘, 심지어 돌에도 영적인 힘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다. 이런 생각은 건축과 공예품에도 영향을 미쳐 피라미드, 신전, 석상 등에서 우주의 조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집트 문명은 다신교적 체계를 기반으로 하며, 자연과 인간, 신의 조화를 강조했다. 신격화된 자연 태양신 라(Ra), 하늘의 여신 누트(Nut), 대지의 신 게브(Geb) 등은 자연 현상을 신으로 구체화한 사례이다. 이집트 예술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주제는 내세와 영혼의 불멸이다. 미술품과 유물들은 사후 세계를 위한 준비로 제작되었다. 관, 파라오의 무덤, 미라 장식품 등은 죽은 자가 영원히 생존할 수 있도록 돕는 신성한 물건들이다.
박물관을 몇 시간 만에 둘러본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작품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익어온 세월과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와 변모 속에서 겨우 하나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들을 한꺼번에 몰아놓았으니, 각각의 유일무이한 특성과 행간에 감춰진 의미들을 어떻게 쫓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사전 학습 없이 그냥 던져진 상태로 이 많은 작품들과 유물들을 대하다 보니 처음 가졌던 설렘은 슬며시 뒤로 물러나고 그게 그거 아닌가라는 하찮은 웅덩이에 빠질 확률이 점점 높아진다.
그럼에도 석관에 새겨진 정교한 문자와 문양들, 돌들에 새겨진 생생한 질감과 아기자기한 작은 장식품들은 세련된 디자인과 색감이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보게된다. 마치 80년대 초에 유행했던 팝음악을 지금 들어도 세련된 사운드와 비트, 보컬이 생생한 것과 마찬가지다.
<아까 거기>를 <지금 여기>로 가져오는 수레는 박물관이고 미술관이다. 그 수레에 담긴 보석과도 같은 유물들을 <지금 여기>서 바라보면서 <아까 거기>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어떤 생각들을 담았는지, 어떤 의미와 의도가 있었는지 뜯어보다 보면, 사람이 태어나서 살다가 이 세상을 마감하게 되는 거대한 연대기와 만날 수밖에 없다. 우리라는 현재의 존재를 거기에 잠시 대입해 보면 의미 있는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말이 가닿을 수 없는 경계의 끝자락에 자신을 올려놓는 잠시 동안의 침묵 속에서 평안함을 느낀다.
이 석판들은 낯이 익다. 이집트 예술에 대한 조예가 있어서가 아니라, <프린스 앤 프린세스>라는 영화에 등장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어서다. 궁전에서 벌어진 수많은 일화적인 사건들이 상징적으로 박혀 있어서 일기장을 들여다보거나 아니면 역사책의 한 장면을 기술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등장인물들은 근엄하지 않고 친근해 보여서 좋다. 살아서 겪었던 사건들과 사후에 함께 간직할 일들과 그를 지킬 수호자의 이미지가 중첩된다. 일기를 쓰고 여행기를 쓰고.... 글을 써서 남기는 일의 소중함에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박물관에서 할애한 전체 시간을 따졌을 때 가장 긴 시간을 들여다본 작품이다. 청록색의 하마, 그에게는 무슨 비밀이 담겨있는 것일까? 오랜 세월이 흘러갔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맑고 분명한 색조, 몸 전체에 새겨진 문양과 새들. 하필 하마? 동물의 왕국에서 본 하마는 옅고 둔탁하면서 두껍 한 회색 빛깔이었다. 문득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님이 사주신 옷이 생각난다. 얇실한 반바지, 가볍고 숨구멍이 탁 틘 티셔츠...... 브랜드가 곧 품질임을 겉멋으로 마음속으로 실감했던 시절, 아니 브랜드가 그래야만 했던 시절을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버티고 있는 시간들..... 나이키가 아니라 나이스, 프로스펙스가 아니라 프로스펙트.....
고대 이집트에서 하마(hippopotamus)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이미지인 동시에 긍정적이고 생산적이며 근원적인 상징을 표현하고 있다. 하마는 나일강 유역에서 서식하며, 크고 힘이 센 몸집과 강력한 턱을 가진 동물인데, 낮에는 물에 머무르며 평화로워 보이지만, 밤에는 육지로 올라와 식물을 뜯고, 특히 농경지를 파괴하기도 했다.
하마는 종종 이집트 신화에서 혼돈과 악을 상징하는 동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혼돈과 폭력, 파괴를 상징하는 신인 세트(Set) 신과 관련된 동물로 간주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하마는 때때로 사냥의 대상이 되었으며, 파라오들은 하마를 사냥하며 힘과 용맹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왕의 역할이 혼돈(하마)을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음을 상징했다.
다른 한편, 하마는 물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물을 통한 풍요와 재생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암컷 하마는 다산과 어머니로서의 보호적인 이미지를 갖추고 있었다. 하마는 고대 이집트 여신 타우레트(Taweret)와 강하게 연결된다. 타 우레 트는 하마의 몸, 사자의 앞발, 악어의 꼬리를 가진 혼합적인 형태로 묘사되며, 임산부와 어린아이를 보호하는 수호신으로, 다산과 출산을 상징했다. 타 우레 트는 악령과 혼돈으로부터 가정을 지키며, 특히 여성들에게 매우 중요한 신으로 여겨졌다. 고대 이집트에서 청록색의 파양스(Faience)는 나일강의 물과 생명력을 상징하며, 이러한 하마 조각상은 풍요와 번영을 가져다준다고 여겨졌다. 이 조각상은 종종 무덤에 부장품으로 넣어져, 죽은 자가 내세에서 보호받고 풍요를 누리도록 돕는 상징적 역할을 했다.
죽으면 그만 아닌가? 아닐 수도 있지. 굳이 뭔가를 통해 혹은 뭔가가 되어 여기 이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가? 그렇다!! 그래야 한다.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이 후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통로다. 이 통로에 들어서면 내가 거기로, 거기 있는 그들이 여기로 온다. 품격 있는 침묵 속에서 주고받는 대화 속에 잠시 시간은 정지되거나 천천히 흐른다. 그들의 삶의 흔적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칠 때가 바로 지금 여기인 것이다.
문득 조셉 캠벨의 <신화의 힘>에 등장했던 수많은 문장들 중 따로 정리해 둔 파일을 연다. 예술작품을 체험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그의 말을 통해 들여다본다.
"과거 없이 미래를 맞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아무리 현재를 사랑해 봐야 현재는 곧 과거가 됩니다. 상실, 죽음, 탄생….. 삶은 이렇게 돕니다."
"잘 짜인 예술 작품을 볼 때마다, 우리는 <아>하고 감탄하고는 합니다. 이렇게 감탄하는 까닭은 이 작품이 우리 삶의 질서를 드러내고 종교가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입니다. 이걸 알고 있으면 어디에 가든지 자기 천복의 벌판에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문을 열어줍니다. <천복을 좇되 두려워하지 마라,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릴 것이다.> 천복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입니다. 영원한 생명수는 그게 어디가 되었든, 우리가 있는 곳에 있습니다. 자기 천복을 좇는 사람은 늘 그 생명수 마시는 경험을, 자기 안에 있는 생명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지요. "
"나는 곧 깨달음의 수레이고 내가 곧 정신의 광휘인 겁니다. 자기 삶을 가슴으로 사는 삶의 단계에 올려놓은 사람에게는 다 그렇습니다. 남의 삶에서 <나>의 삶을 인식하는 데서, <나>와 남은 둘이지만, 삶은 하나임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겠지요. 신은 그 하나의 삶을 표상하는 이미지입니다. <종교 religion>라는 말은 <렐리기오 religio>, 즉 <뒤로 연결됨>을 뜻합니다. 상호 연결되는 상태를 드러내는 것, 이것이 곧 종교인 겁니다."
시간의 단편을 통하여 원초적인 존재의 광대무변한 힘을 체험하는 것, 이게 바로 예술의 기능입니다. 아름다움은 <살아 있음>의 환희의 드러남이고 순간순간의 삶이 그런 체험의 연속이어야 합니다. <이 순간>이 바로 우리에게는 아주 중요한 순간입니다.
- 조셉 캠벨 <신화의 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