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엔나에서 3일 - #6 비엔나 중심가 3

by 새로나무

성당을 나와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과 테레지아 여제의 동상이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5년 전 세 시간 동안 바삐 다니며 사진만 찍고 겨우 렘브란트 자화상 앞에서 짧게 감상하고 아쉽게 돌아섰었다. 내일은 제대로 감상하리라 마음먹는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하늘 위로 테레지아 동상의 위엄이 사진에 들어와 그녀가 어떤 역할을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했는지 모르지만 실루엣이 뭔가 암시하는 것 같다. 그가 지켰을 그 무엇과 그녀가 지키지 못했을 그 무엇, 즐거웠을 그 무엇과 아쉬웠을 그 무엇 사이로 압축된 시간의 흐름이 노을 위로 번지고 있다.

궁전 벽면에 여러 사람들의 조각상들이 눈에 들어온다.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당대 비엔나의 다양한 계급이나 직종들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 중 시선을 사로잡은 단 한 사람의 표정 속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단단하게 딛고 서있는 힘과 한쪽 다리를 약간 구부려 쉬면서 바라보고 있는 시선의 끝을 쫓아간다. 저 멀리 비엔나 시가의 아득한 풍경들이 펼쳐지는 곳에 나도 잠시 시선을 두고 멍 때리다가 시장기와 갈증에 발걸음을 옮긴다. 이번 여행의 콘셉트는 하루 두 끼 먹는 것, 많이 걷기 위해 아침은 든든하게,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은 마음껏, 부드럽고 풍부한 거품 아래 맑은 맥주와 함께 하기로.

완연한 가을 거리의 풍경이 일상적이어서 잠깐 놀랬다. 여행을 와있는 동안은 여기가 나의 일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어행의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한 것 같다. 내 몸과 마음을 형성하는 항상성이 작동하는 방식이 한국에서와 비엔나에서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도달하자, 제대로 이 여행을 즐길 수 있는 통찰을 얻은듯하여 나만 헤죽헤죽 웃으면서 길을 걸었다. 걸어 다니는 길은 잘 잊히지 않는다. 트램이나 버스를 타지 않기로 한 결정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벌목한 나뭇가지들을 잘게 쪼개서 나무 주변에 뿌려진 위로 흩어진 낙엽이 쌓여서 폭신한 기분으로 잠시 걸었다.

오전에 봐둔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병원처럼 보이는 곳에서 인상적인 조각상들을 만났다. 우아하고 품위 있는 자태의 여인의 모습과 아이와 같이 있는 여인의 당당하고 굳센 이미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래오래 걸어 점심 먹은 기억이 희미해지고, 소화도 다되어 시장기가 돌 무렵 브루어리 식당에 도착했다. 그 지역에 가면 그 지역 음식과 그 지역의 술을 마시는 것이 편안하다. 독일이 pilsner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체코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여 pils로 사용하고 있다. 이 브루어리 역시 독일 맥주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한다. 라거맥주는 pils, 밀맥주는 weizen, 에일 맥주는 marzen의 순서로 한 잔씩 음미한다. 맥주는 역시 첫 잔의 첫 모금이 제일 맛있다. 배고픔과 갈증과 여독을 한 순간에 날려주는 매력에 포위되는 즐거움으로 나른해진다. 진한 맥주를 맛보면 취할 수도 있어서 맥주 샘플러로 갈음했다. 적당한 취기, 적당한 분위기, 적당히 배부름, 적당한 시간, 적당한 행복.....


제법 빠른 속도로 굴라쉬와 샐러드, 생선 요리가 자리를 잡는다. 각자 메뉴를 먹는 문화를 간직한 유럽에서 "we gona share"는 우리만의 음식 먹는 방식임을 분명히 의사전달한다. 그래야 도구도 사람수에 맞게 가져다준다. 여러 음식을 각자 먹는 것과 여러 음식의 다양한 맛을 같이 즐기는 것은 차이가 많다. 자주 올 곳이라면 몰라도 이렇게 평생에 한번 올까 말까 하는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국물이 있는 굴라쉬를 기대했는데, 식감이 괜찮다.

광장 분수에 조명 색깔이 수시로 바뀌니 걸음을 잠시 멈추고 그 물기둥의 표정을 감상한다. 길고 즐거운 하루를 마치며 돌아가는 길을 촉촉이 적셔주는구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비엔나에서 3일 : #5 비엔나 중심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