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지 않으면, 선택받지 못한다.

by 최진규


작년에 이탈리아 도시들을 여행하며 다양한 파스타 요리를 맛본 적이 있다. 로마 전통 파스타 요리 중 카쵸에페페(Cacio e Pepe)는 치즈와 후추, 단 두 가지 재료만으로 만든다. 여기에 관찰레(돼지 볼살 베이컨)를 더하면 그리치아(Gricia)가 된다. 그리치아에 달걀노른자까지 추가하면 모두에게 익숙한 까르보나라(Carbonara)가 된다.


- 카쵸에페페: 치즈 + 후추
- 그리치아: 치즈 + 후추 + 관찰레
- 까르보나라: 치즈 + 후추 + 관찰레 + 계란노른자


이 세 요리의 인지도와 판매량이 흥미롭다. 까르보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이탈리아 레시피 1~2위에 오를 만큼 인지도가 높다. 카쵸에페페도 '미니멀리즘의 극치'라는 수식어와 함께 전 세계 미식가들 사이에서 급부상하며 이탈리아 관광객 선호도 5위에 올랐다. 까르보나라는 풍부한 맛과 완성도가 특징이며, 카쵸에페페는 재료의 본질에 집중한 맛으로 각자의 정체성이 뚜렷하다.


그런데 이 둘 사이에 어중간하게 끼어있는 그리치아는 대부분의 인지도 조사에서 상위 10위 안에조차 들지 못한다. 외국인들에게는 '계란 없는 까르보나라'로 설명해야 겨우 이해시킬 수 있는 요리다. 카쵸에페페만큼 재료의 본질에 집중하지도 못하고, 까르보나라만큼 완성된 풍미를 갖추지도 못한 어중간함 때문이다.


일과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향하는 것과 지양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명히 밝혀야 사회적 존재가 된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자신도 선택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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