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사에서 글로벌 소프트웨어 콘퍼런스를 기획할 때의 일이다. 10여 개국에서 1,500명이 참가하는 대형 행사였다.
나는 행사 운영을 준비할 때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 행사에서 발생 가능한 최선의 시나리오와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사고실험을 한다. 사고실험은 현실에서 발생 가능한 가능성을 상상하는 과정인데, 이 양극단을 상상하며 대응책을 준비하면, 현실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상황은 상상했던 양 극단 값의 중간에서 발생하므로 모든 상황에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최선의 시나리오는 참석률 100%, 발표자 전원 1시간 전 도착, 만족도 4.9점(5점 만점), 주요 언론 10곳 이상 긍정 보도이다. 그리고 최악의 시나리오는 참석률 40%, 키노트 스피커 1시간 지각, 만족도 3.0점, 부정적 언론 보도 등이다. 이처럼 양극단에 대한 대비가 완료되면 행사는 어떻게든 진행된다는 확신이 생긴다.
그다음 단계는 행사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한 경계를 설정하는 일이다. 예산 초과하지 않기, 참석률 80% 이상 달성, 만족도 4.2점 이상 등의 기준을 합의한다.
경계가 명확해지면 개인은 수단과 방법의 선택에 자유를 얻는다. 예산 내에서라면 보잉의 최고기술임원도 초청할 수 있었다. 세션 진행이 보장된다면 인원 초과 시 온라인을 병행하는 방법도 활용할 수 있었다. 참석률 80% 기준이 달성되니 무리하게 참석자를 동원하는 노력을 하지 않고, 콘텐츠와 강연의 품질에 집중할 수 있었다. 역설적으로 통제가 자유를 만들어낸 셈이다.
인간의 뇌는 모호함을 싫어한다. 행사 잘 준비하라는 막연한 지시는 불안을 유발한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뇌는 끊임없이 경우의 수를 계산하며 에너지를 소모한다.
반면 '최소 80% 참석률', '예산 이내'라는 구체적 통제선은 역설적이게도 안정감을 준다. 팀 운영에서도 허용 가능한 경계를 명확히 합의하면 그 안에서 진정한 자유가 가능해진다.
자유방임은 가장 낮은 성과를 도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명확한 통제 안에서의 심리적 안전감은 자유와 창의를 만든다.
자유를 부여하려면 먼저 통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