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귀한 이야기]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속으로 점수를 매길 때가 있습니다. 잘했다, 부족하다, 그건 좀 아니다. 말은 끝까지 듣지만 마음속 판결은 이미 내려진 뒤입니다. 이상한 건, 그렇게 판단을 끝내고 나면 상황이 정리되기보다 오히려 마음이 더 복잡해진다는 점입니다. 마치 그 기준이 언젠가 나에게도 그대로 돌아올 것 같은 예감 때문입니다.
그러다 문득 깨닫습니다. 남의 작은 실수는 이렇게 잘 보이면서, 정작 내 삶에 버젓이 자리한 문제들은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도와주겠다는 말로 다가갔지만, 사실은 내 기준을 들이밀고 있었던 건 아닐까 돌아보게 됩니다. 제대로 보지도 못하면서 고쳐주겠다고 나섰던 셈입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모든 말을 쏟아내는 게 옳은 것도 아니라는 걸 압니다. 어떤 말은 준비되지 않은 사람 앞에서 오히려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묻습니다. 지금 이 말이 정말 도움이 될까, 아니면 그저 내 판단을 확인받고 싶은 걸까 하고요.
대신 방향을 조금 바꿔봅니다. 누군가에게서 받고 싶은 대접이 있다면, 그 방식을 먼저 건네보는 쪽으로 말입니다. 완벽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계를 덜 망치기 위해서. 판단하는 사람보다, 조심스럽게 구하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어쩌면 그게, 사람을 대하는 가장 오래된 동시에 가장 어려운 연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태복음 7 : 1~12 사람을 향한 관용, 주님을 향한 기도)
"삼촌 개구쟁이야~!"
조카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우유를 뺏어 먹고 나서 들었던 말입니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꾹 눌러 담아 내뱉은, 참 귀여운 단어였습니다. 내 입을 더럽히지 않고도, 나에게 찾아온 불행(?)을 아름답고 우아하게 맞이하는 말. 그날 이후로 그 단어는 하루에도 서 너 번씩 제 입술 근처를 맴돌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개구쟁이들을 만났습니다. 그것도 상식을 훌쩍 뛰어넘는, 다양하고도 많은 이들이었습니다. 깜빡이도 없이 갑자기 끼어드는 옆 차선 차량, 나이가 어려 보인다고 대뜸 반말로 훈수하는 경비 아저씨, 자기 실수에는 관대하지만 남의 실수에는 유난히 엄격한 사람들. 이유 없는 사람은 없다지만 그전에 제 마음은 이리저리 치이고 맙니다.
그래서 상대의 흠을 찾습니다. 이유를 만들어 애써 이해한 척합니다. '교육을 못 받아서 그런 걸 거야,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저런 걸 거야,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그래.' 그렇게 딱지를 붙이고 나면, 내가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사실은 그저 내 마음을 지키고 싶어서입니다. 멋없습니다.
누구나 온전하고 싶어 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고 싶어 합니다.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던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고된 하루를 살아내느라, 조금 더 버텨내느라, 어느새 마음에 가시가 돋아났을지도 모릅니다.
개구쟁이들 안에도 분명 아름다운 모습이 있습니다. 다만 오늘, 그 주변에 그 모습을 찾아주는 사람이 없었을 뿐입니다. 아니, 어쩌면 오늘 내 옆에 그들이 있었던 이유가 그것일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에게 개구쟁이였을 내가, 누군가가 내 안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주었기에 조금 덜 거칠어질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세상이 아주 조금은 더 아름다워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