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만큼, 그것도 나를 가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이야기]

by 이진규

어느 날 한 젊은 사업가가 한 스승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성실했고, 도덕적으로도 흠잡을 데 없었고, 이미 많은 것을 이룬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제가 더 나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스승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뜻밖의 말을 합니다.

“당신이 붙잡고 있는 것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까?”

그 청년은 침묵합니다.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미 가진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안전이었고, 명예였고, 스스로를 지탱해 온 방식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조용히 돌아갑니다.

곁에 있던 제자들이 놀라 묻습니다.

“저 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사람 아닌가요? 그 사람도 어렵다면, 도대체 누가 가능하죠?”

스승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람 힘으로는 어렵다. 하지만 세상에는 사람 계산으로 설명되지 않는 가능성도 있다.”

잠시 후, 제자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우리는 꽤 많은 걸 내려놓았습니다. 그 선택은 헛된 게 아니겠죠?”

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합니다.

“세상은 먼저 잡는 사람이 앞선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세계에서는, 먼저 내려놓는 사람이 앞선다.”

(마태복음 19 : 23~30 헌신하는 삶에 따르는 보상)


무소유. 한 때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던 단어입니다.

법정 스님의 책을 통해 널리 알려졌고, 그는 많이 가질수록 오히려 불행해지는 삶의 아이러니를 이야기했습니다. 물질의 풍요 속으로 스며드는 불안과 공허를 꼬어냈습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붙잡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안을 돌아보게 됩니다. 재물, 명예, 경쟁, 욕심, 불안. 검은 옷을 입은 단어들이 슬며시 떠오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여전히 가지고 싶습니다. 아무리 덜어내도 또 채워집니다. 상황이 바뀌고 직장이 달라지고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면, 새로운 욕망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마치 내 안 어딘가에 멈추지 않는 공장이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덜어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지 모른다고. 공장의 엔진이 멈추지 않는 한, 무엇이든 계속 만들어질 테니 말입니다. 비워내는 고통을 반복하는 대신, 무엇으로 채울지를 고민하는 쪽에 더 마음이 갑니다. 기쁘고 행복한 것으로 채우기에도 아까운 시간이니 말입니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무언가를 가진다는 것은, 우리의 일부를 그것과 맞바꾸는 일과도 같습니다. 긴 시간을 공들여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그 안에는 우리가 쏟아부은 시간과 열정, 에너지가 스며듭니다. 아니, 그 그림 안에 우리의 시간이 스며듭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만큼, 그 가진 것에 의해 규정됩니다.

내가 가진 만큼, 그것도 나를 가집니다. 비움과 채움은 서로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붙잡느냐입니다.

그저 내려놓기만 하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방향을 잃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더 의롭고, 가치 있는 것을 꼭 움켜쥐어야 합니다. 나를 나답게 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하며, 흘러넘쳐 다른 사람을 살리는 그 무언가를.

그래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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