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누군가에게 보잘것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이야기]

by 이진규

사람은 대단한 일을 하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은 아주 작은 선택들로 채워집니다.

마주친 사람을 외면할지, 잠시 멈출지, 손을 내밀지. 그 순간들은 너무 작아서 기억에도 남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합니다. 그 작은 순간들이 결코 작지 않다고요.

우리는 사람을 대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 모든 순간이 하나님을 향한 반응일지도 모릅니다.

보이지 않는 분은 보이는 가장 작은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거창한 고백이 아니라, 누구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드러납니다.

결국 우리는 무엇을 믿었는지가 아니라, 누구를 사랑했는지로 드러나게 됩니다.

(마태복음 25 : 31~46 최후 심판 기준, 행함 없는 믿음)



찬 바람이 불어올 무렵, 반가운 메일을 받았습니다. 의과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인데, 제가 하고 있는 연구에 관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방학 동안 연구실에 나와 함께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컴퓨터 화면을 가득 메울 정도로 빼곡히 적힌 그 메일에는 그 친구의 진심이 꾹꾹 눌러 담겨 있었습니다.

20대 초반의 제가 떠올랐습니다. 배울 것이 많아 보이는 교수님이든, 대표님이든, 선배님이든 누구라도 좋았습니다. 무작정 메일을 보냈습니다. 맞춤법은 틀리지 않았는지, 무례한 표현은 없는지, 내 마음이 간결하게 잘 전해지는지 몇 번이고 읽어보고 또 읽어본 뒤 전송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리고 답장을 기다렸습니다. 진심이 닿기를 바라면서.

돌이켜보면 고마운 사람들 투성이었습니다. 후배라는 이유로 시간을 내어 밥을 사주던 선배, 존경하는 교수님의 소개로 오스트리아의 연구소를 구경시켜 주셨던 선생님, 일면식도 없었지만 서툰 질문에도 스크롤을 한참 내려야 할 만큼 자세히 답변해 주셨던 대표님까지. 그분들은 기억하지 못할지 몰라도, 보잘것없던 저는 기억합니다. 여전히 제 안에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흘러갑니다. 누군가 흘려보냈기 때문에 다시 흘러갑니다.

저는 그저 그 길목에 앉아 있습니다. 여전히 보잘것없는 제게는 과분한 자리입니다. 그래서 감사할 뿐입니다.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오늘은 그 학생과 함께하는 마지막 날입니다. 문득 묻게 됩니다. 그 친구에게 묻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제 자신에게 묻고 있습니다.

지난 두 달간 어땠느냐고,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느냐고.

제 질문에 그 학생은 빙그레 웃습니다.

아직은, 답이 흘러가는 중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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