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오늘도 매진되었습니다>를 읽고
모든 일에는 흐름이라는 게 있다. 독서도 마찬가지. 웬만하면 한번 펼친 책은 끝까지 읽는 편이지만, 중간에 몇 차례 흐름이 끊긴 책은 김이 빠지게 마련이다. 최근에 읽은 책 <오늘도 매진되었습니다>(필름, 2021)이 그랬다. 2시간이면 다 읽을 책을 무려 2주에 걸쳐 읽었다. 예기치 못한 교회 수련회와 빡빡한 업무로 인해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냥 다른 책 읽을까'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었다.
표지를 대충 훑어보니 젊은 직장인이 농부가 되어 소위 '대박'을 터뜨린 이야기라 한다. 읽기도 전에 삐딱한 마음이 꿈틀댔다. 성공과는 거리가 먼 나이기에 괜히 나와는 맞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글쓴이의 자랑으로 가득한 책이지는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MZ세대인 저자는 연 매출 100억 회사의 대표이자 연간 60만 명이 방문하는 춘천의 명물 '감자빵'의 주인공이지만, 우쭐대거나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지만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또한 이 책은 단순히 '자영업자가 성공하는 비결'같은 게 아닌, 자신의 삶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글쓴이는 성장환경이 무척 열악했다. 자영업자인 부모님과 함께한 시절은 풍요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감자빵을 개발하고 판매량이 급격히 늘어나 우연히 백화점에서 판매 제안을 받기까지 백화점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학창 시절 주걱턱과 예쁘지 않은 외모로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또한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라 인문계가 아닌 실업계로 진학하게 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떨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어느 것 하나 멀쩡한 게 없어 보이는 그녀였음에도 삐뚤어지거나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한결같이 자신을 믿어준 부모님 덕분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하교 후 하루종일 게임을 하거나 형편없는 성적을 받아도, 그녀의 부모님은 '네가 행복한 삶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하며 언제나 딸을 믿어주고 격려해주었다고 한다. 글쓴이는 그런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마음을 잡으며,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담담히 말한다.
회사생활을 접고 아버지의 전화 한 통에 춘천으로 귀농한다는 것이 사실 말처럼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또한 고민을 하지 않았을 리 없다. 대기업에 입사하고, 원하는 시험에 합격해 취직을 한 뒤에도 곧 퇴사하는 청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미래가 불투명함에도 '내가 원하는'삶을 추구하는 MZ세대의 가치관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렇다 할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감자밭'과 함께하는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선택할 수 있었을까.
글쓴이는 부모님을 사랑했고, 아마도 그 부모님이 힘들어하는 것을 지켜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농사에 문외한인 그녀가 익숙한 서울이 아닌 낯선 춘천에서 살아가는 삶은 안정보다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믿고 과감한 선택을 한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고된 노동, 수확한 감자들이 판매로 이어지지 않을 때의 좌절을 경험하며 글쓴이는 밤마다 울었다. 오랫동안 깜깜한 터널을 통과하는 것처럼 답답하고 두려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때마다 상황을 원망하고 불평하기보다는 버티고 또 버텼다. 자신처럼 귀농한 사람들, 농업과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과의 네트워크 형성을 통해 기존에 알지 못했던 농업에 대한 다양한 지혜와 노하우를 배우며 성장해 나간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닌 좋은 감자를 만들고 건강한 농업공동체를 위해 고민하는 모습은 저자가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또 치열하게 살고 있음을 드러낸다. 빠른 시간에 저렴한 비용으로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닌, 건강한 자연과 인류를 위해 다양한 품종의 감자를 고집하는 것을 통해 저자의 지혜롭고 건강한 경영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책 말미에 회사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덕목에 대해 기록한 것이 나오는데, 익숙한 성경 구절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글쓴이가 나와 같은 크리스천임을 알 수 있었다. 유례없이(?) 개신교 신자들이 쌍욕을 먹는 시대에 자신의 삶을 통해 빛과 소금처럼 선한 영향력을 발하는 저자가 참 귀하고 멋있다.
개인적으로는 2030 청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경쟁에 치이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마땅한 일자리를 갖지 못해 힘들어하는 청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삶이 공평하지 않은 것 같고 누구에게나 삶은 힘들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삶을 미워하지 않고 꿋꿋하게 달려 나가는 저자의 삶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감자빵만큼이나 큰 울림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덧) 글쓴이가 운영하는 농업회사법인 '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회사에 대한 소개와 다양한 제품이 소개되어 있다. 치즈 감자빵, 토마토바질 감자빵, 마늘 감자빵, 불닭 감자빵 등 이름만 들어도 뭔가 건강해지는(?) 다양한 제품들이 보인다. 조만간 한 번 도전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