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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글 좀 썼니?

책 <쓰기의 말들>을 읽고

by 손수제비

기억에 남는 책은 이유가 있다. 재미가 있어서(없어서), 내용이 좋아서, 신선해서, 감동적이어서, 공감할 수 있어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어서. 어떤 책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문장 자체가 뭔가 다르다. 예를 들어 은유작가의 책이 그렇다.


르포르타주, 인터뷰 등 다양한 글을 쓰지만 내가 읽은 저자의 책은 주로 글쓰기와 관련된 것이다. 작고 얇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은 책 <쓰기의 말들>(유유, 2016) 역시 쓰는 내용을 다룬다. 저자는 '더 많은 사람이 쓰는 삶을 사는 살기를 바라며' 이 책을 쓴 것 같다. 하지만 책을 읽고 든 생각은 좀 달랐다. 이 책은 단순히 '쓰는 삶'을 위함이라기보다는, '잘 쓰는 삶'에 초점을 맞춘 느낌이랄까.


그러니까 이 책은 타겟이 분명하다. 글쓰기를 좋아하면서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다르게 말하면 위의 경우가 아니라면 책을 읽기가 조금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잘 쓰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글쓰기를 놓지 않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저자가 책에서 말한 바와 같이 누구나 글을 쓰고 싶어 하지만 모두가 글을 쓰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글쓰기는 2가지를 필요로 한다.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쓰기 위한 시간.


책 <쓰기의 말들>의 저자는 단순히 글을 쓰는 것에서 그치는 삶을 살지 않는다. 그녀의 글에서는 여느 작가들의 글과는 다른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쓰기 위해 사는 사람, 쓰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는 사람, 돈보다도 글을 쓰는 게 더 소중한 사람, 쓰는 것에 완전 진심인 사람 같은, 그런 느낌이.


글쓴이는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 건강이 필요하다고 한다. 자본주의 시대에 수입의 불안정보다 글쓰기의 불안정이 견디기 힘들다는 말은, 쓰는 삶이 저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드러낸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꽤나 물질적이고 구조적이다. 어떤 당위도 돌아오는 끼니 앞에 무색하다. 그리고 몸은 익숙한 곳을 좋아한다. 먹고살기 위해 아침저녁 지옥철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퇴근 후 매일 글을 쓰기가 어렵다는 걸, 나는 일 년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알았다. 아주 체력이 좋다면 모를까, 난 힘에 겨워 결국 직장을 그만두었다. 수입의 불안정보다 글쓰기의 불안정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39

내게 글쓰기는 창작 행위보다 사는 행위에 가깝다. 역동적이고 상호 관계적이다. 난 밀실만큼 광장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고, 내 얘기만큼 남 얘기가 궁금하다. 암호처럼 복잡한 세상을 명쾌한 언어로 가려내고 싶고, 아무도 듣지 않는 한 사람의 이야기들을 받아 적으며 생의 비밀을 풀고 싶다. 그런 글 쓰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 -45

필력은 체력이다. 머리가 맑지 않으면 단어 하나 떠오르지 않고 사실 관계 확인도 귀찮아지니까 단단한 글이 나올 수 없다. 감정의 건강도 챙겨야 한다. 작가는 쓰는 사람이기 전에 듣는 사람이다. 심사가 복잡하면 왜곡해서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듣는 귀도 건강에서 온다. -227



글쓴이는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저자의 삶은 보통 사람과는 영 달라 보인다. 남들이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 그녀는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저자는 독서를 많이 하지만 '분량 대비 건질 문장이 적어'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다고 한다. 책을 읽는 것조차 글쓰기의 관점에서 읽다니, 더 나은 문장을 위해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한편으로는 좀 가혹하다는 생각도 든다.


논리적으로 결함은 없는지, 단어나 문장 하나라도 어색하지 않은지 철저하게 확인하는 습관은 어정쩡하거나 어색한 글을 만들 수 없게 한다. 자신이 정한 글쓰기의 원칙을 고수하며 글과 끝까지 씨름하는 삶은 단단하고도 날 선 문장을 만들어 낸다.


글쓰기에 대한 저자의 태도와 생각을 읽으며 요즘 내가 어떤 글을 쓰는지 돌아본다. 바쁘다는 핑계로 글쓰기를 게을리하고, 힘들다는 핑계로 쓰기보다는 읽기를 택한다. 글쓰기 근육이 퇴화해 버린 나머지 이제는 쓰고자 하는 마음을 잡는 것조차 쉽지 않다. 사실 <쓰기의 말들>을 읽은 지도 오래되었다. 쓰고자 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키워보고자 뒤늦게라도 끼적여본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 것 치고는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왜 소설을 안 보냐고 물으면 "분량 대비 건질 문장이 없다"라는 말을 뻔뻔스럽게 늘어놓곤 했다. 다독가라기보다 문장 수집가로, 서사보다 문장을 탐했다. 우표 수집가가 우표를 모으듯 책에서 네모난 문장을 떼어 내 노트에 차곡차곡 끼워 넣었다. -11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정으로 틈틈이 서점을 찾았다. 글쓰기 관련 책을 뒤적였다. 내가 쓰는 글이 맞는지, 문법에 오류는 없는지, 구성은 괜찮은지, 주제는 어떻게 담아내는지 점검했다. "동사가 약한 단어의 조합이 엉성하면 문장은 산산이 부서진다", "표현력은 단어와 단어의 연결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같은 참조할 만한 문장을 메모했다. 반복적으로 쓰기만 한다고 필력이 길러지는 게 아니란 걸 받아들였다.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고 할 때는 "솔직할 것, 정확할 것, 숨김없이 투명하게 보여 줄 것, 모호하게 흐려선 안 된다" 같은 타협 없는 문장을 떠올리며 한번 더 글과 씨름했다. -12

크게는 두 가지 질문을 오가면서 읽는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자 했는가?'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잘 전달되었는가?'. 그 단어가 정확한지, 문장이 엉키지는 않는지, 단락 연결이 매끄러운지, 근거는 탄탄한지, 글의 서두와 결말의 톤이 일관된 지, 주제를 잘 담아내는지. 살피고 고친다. 10매 내외의 칼럼 원고 한 편이라고 퇴고는 버겁다. 그러니 책 한 권 분량은 가혹하기까지 한 것이다. -193

학인들 글을 합평할 때 '첫 단락, 빼도 되겠네요'라는 말을 매번 한다. 힘이 들어간 첫 단락은 사족인 경우가 많다. 애매한 단락은 버려야 글이 선명해진다. 단락별로 소제목을 달아본다. 소제목끼리 이어서 읽어 봤을 때 글 전체 내용이 요약되면 성공한 글이다. -209

사전을 수시로 열어 본다. 원고를 쓸 때는 물론이고, 글을 읽거나 말을 하다가 사전을 찾는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유사 단어도 검색한다. 글 쓰다가 적합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빨간색으로 표시해 놓는다. 최종 원고 과정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공사현장에서 떨어뜨린 나사를 찾는 듯 막막하지만 반드시 있다는 심정으로 글의 문맥을 꽉 조여 주는 최적의 단어를 찾아 헤맨다.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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