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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제비 Jan 07. 2024

감사일기 24.01.07

오늘 하루도 감사합니다

나는 개신교 신자이고 모태신앙이다. 독실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나일론 신자에 가까운 신도임을 밝힌다.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는 3번째 교회이다. 마흔 정도 되었으니 단순히 계산하면 교회 한 곳당 13년 정도는 다닌 셈이다.


새로운 것을 반기지 않고 무언가에 적응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다니던 교회를 옮긴다는 것은 꽤나 많은 결단을 요구한다. 단순히 1주일에 한 번 예배에 참석하는 수준이 아니라 생활 전반이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교회를 바꾼다는 것은 인간관계를 비롯한 삶의 많은 부분들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를 옮긴 것은,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옮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회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심각한 윤리, 도덕적인 문제가 발생해서였다. 돈문제, 사람문제와 같은 것들로 인해 웬만해서는 평생 한 교회에 조용히 정착하기를 원했던 나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교회마다 다를 수는 있지만, 일반적인 경우 담임목사와 일개 평신도가 단순 인사 이외에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은 드문 케이스이다. 예배가 있는 주일은 너무 바쁘고, 예배가 끝남과 동시에 성도들은 마치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하는 듯이 빛의 속도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현재 목사님과 함께한 지는 7년 정도 되었다. 여느 때처럼 존재감 없이 어색한 웃음과 함께 인사만 하면서 지낼 수도 있었을 텐데, 이분과는 대화를 그래도 좀 했던 것 같다. 양육훈련 같은 정규 과정도 하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나누는 등 기존의 목사님들보다는 확실히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목사는 목사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교회와 성도를 이끄는, 그런 사명감을 가진 분들. 그래서 40년을 교회에 다닌 나조차도 어리석게도 이런 편견을 갖고 있었다.


'목사들은 마음속으로 조차 죄를 짓지 않을 거야'

'목사들은 누구보다 믿음이 견고하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할 거야'

'그들은 매일의 삶이 기쁨으로 충만할 거야'

'자신이 원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업무에 대한 만족도가 최고에 달할 거야'


지금 돌이켜보면 2% 정도 맞는 것 같다. 내가 내린 결론은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목사나 평신도나 조금 나쁜 사람이나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모두 도찐개찐의 영혼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뉴스를 보면 기독교가 개독교가 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이 많이 등장한다. 물론 대부분의 교회는 멀쩡한 경우가 더 많다. 일부 잘못된 행동을 한 목사나 교회들이 반복되어 보도됨으로써 사람들이 교회와 기독교에 대해 좋지 않은 편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비기독교인들이 모인) 사회와 모임보다 더 깨끗하고 우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힘으로는 스스로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 도와주세요"하면서 모인 사람들, "하나님 도와주세요"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의 모임일 뿐이다.






오늘 목사님 설교 중에 뜻밖의 말을 들었다. 말씀을 선포하는 도중 가끔 예시를 들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시는데, 목사라는 직업이 너무 외롭고 힘들다는 거였다.


너무 힘든데, 너무 외로운데 그런 말을 할 수조차 없다고. 300명 가까이 되는 성도들의 어려움을 듣고 그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위로하며 심방(직접 가정을 방문해서 위로함)하는 것이 목사님들의 일과 중 하나인데, 목사님이 "아 너무 힘들어서 미칠 것 같아요. 누가 저 좀 위로해 주세요"라고 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모범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그런데 도저히 안 되겠단다. 목사도 인간이고 똑같이 힘들고 때로는 위로를 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사랑과 격려를 받고 싶다고. 1년 365일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싶을 때가 있다고.


사실 생각해 보면 부끄러운 발언이 아니고 당연한 말이다. 당연한 말인데, 이런 말들을 당연하게 말하기가 쉽지 않다. 단지 '목사'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는 것 만으로. 어쩌면 이러한 이유로 인해 많은 목사님들이 병들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우리 목사님을 좋아한다.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여러 가지 삶의 영역에서 본을 보이시기도 한다. 돈의 사용이나 말씀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은 많이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는 밤 11시가 넘어 갑자기 전화가 왔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줄 알았는데, 내 친구가 하는 안경점에 들르셨다가 친구에게 내가 부산이 아닌 타지로 복직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목사가 되어서 친구보다 성도의 삶을 더 몰라서 면목이 없다고 하시며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는데, 쉽게 마무리될 분위기가 아닌 것을 감지한 나는 살짝 위기감을 느꼈다.


"뭐 그랄수도 있죠. 목사님도 먹고살기 바쁘실 텐데."


목사님은 여전히 바쁘시다. 나도 많이 바쁘다. 바쁜 건 바쁜 거고 조만간에 한 끼 해야겠다. 사람 냄새나는 목사님이 있어서 감사하다. 계속 어데 가지 마시고 함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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