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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제비 Jun 28. 2023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을 읽고

아무런 소망이 없는 삶에서 발견하는 온기와 연대의 이야기

딸아이의 만점왕 수학문제집을 사기 위해 서점에 들렀다. 인터넷으로 구매해도 되지만 굳이 서점을 간 이유는

신간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소설 코너에 잔뜩 진열된 책들 사이로 칙칙한 색의 책이 한 권 보였다. 책 뒷면에는 내가 좋아하는 정유정 작가의 코멘트가 있었다.


"신선하면서도 노련하다는 점에서, 그 밖에 여러 면에서, 군계일학이었다. -정유정(소설가)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제19회 세계문학상 당선작이다. 아이들과 저녁을 먹은 뒤 8시가 넘어 책을 펼쳤다. 앉은자리에서 뭔가에 홀린 듯이 책을 다 읽었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허구이다. 때문에 어떤 것도 소재가 될 수 있다. 현실과는 상관없는 소설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2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읽는 독자를 숨도 못 쉬게 만들 정도의 탄탄한 스토리 구성과 필력이 첫 번째이다. 근래에 읽은 책 중 가장 강렬했던 것은 '아버지의 해방일지'였다. 이런 책은 읽는 순간 바로 느낌이 온다. '이 사람이 쓴 책은 다 읽어봐야겠다'는 그런 느낌.


두 번째로 '소설이 허구가 아닌 나의 이야기가 될 때' 몰입하며 읽을 수 있다.「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명주와 준성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가족과 연대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돌봄과 간병이라는 재난]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초라해질 수 있는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 -사랑, 가족, 정의, 연대와 같은 것들- 가 얼마나 부질없고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이 든 부모가 있는 사람, 그 부모가 건강하지 않은 사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사람, 세상 누구보다 가족이 소중한 사람, 행복한 삶을 꿈꾸는 사람일수록 차갑고 외로운 주인공의 현실에 멘탈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5가지 모두 해당되었다.



ⓒ네이버 도서



책에는 2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치매 어머니를 간병하는 50대 중년 여성 명주와 뇌졸중 아버지를 간병하는 20대 청년 준성. 이처럼 우울하고 칙칙한 조합이라니.


준성은 아버지 간병을 위해 고등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낮에는 아버지를 돌보고 밤에는 대리기사의 삶을 산다. 알코올성 침해가 있는 준성의 아버지는 수시로 아들을 괴롭게 한다. 항상 전자레인지를 쓰라는 준성의 당부를 잊은 채 가스레인지를 사용하는 도중 화재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화재 연락을 받은 당일 준성은 고객의 고급 외제차를 주차하던 중 갑작스러운 손목 통증으로 인해 큰 사고를 낸다. 보험처리가 원활하지 않아 차주에게 직접 배상을 해줘야 하는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준성의 아버지가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이혼 이후 노모의 13평 임대아파트에서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던 중년 여성 명주는 나날이 정신이 이상해지는 엄마의 폭언과 욕설을 견디지 못한다. 어느 날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노모에게 쓰디쓴 말을 퍼부은 후 밤늦게 귀가한 명주는 노모의 싸늘한 주검을 발견한다.


죽은 엄마의 폰으로 (기초연금과 유족연금을 합친) '1,005,500원이 입금되었다'는 메시지가 발송된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입은 화상으로 인해 경제활동이 어려웠던 명주는 연금으로 노모와 함께 생활해 왔다. 이제는 그 돈으로 혼자 생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단, 연금을 계속 수령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죽음이 공개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렇게 명주는 노모의 시신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삶의 모든 고난은 예기치 못한 타이밍에 찾아온다. 돌봄과 간병도 예외가 없다. 아무런 예고 없이 시작되는 돌봄의 삶은 갑작스럽고 폭력적이며, 간병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다.


늙을수록,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할수록, 가난할수록 더 높은 확률로 아픈 노년을 보낸다. 건강수명이 짧은데 기대수명이 긴 것은 축복이 아닌 재앙이다.


돈이 없는 사람은 마음대로 아프지도, 돌봄을 받지도 못한다. 죽고 못 사는 부모 자식관계도 돈 앞에서는 종이 한 장보다 못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필요에 의해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는 반려견처럼, 우리의 가족들도, 나 자신도 같은 상황에 처해질 수 있다. 우리의 물질과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지켜야 할 사람은 많은데 가진 게 한정되어 있다면, 우리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내가 살 것인지, 다른 사람을 살릴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법과 윤리, 도덕적인 가치와 같은 것들은 생사의 기로에 선 인간에게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누군가를 돌보는 삶은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온다. ⓒ픽사베이



명주와 준성은 가족의 간병을 위해 자신의 삶 전체를 희생한다. 생존을 위해 돈이 필요했지만, 돌봄에 매인 몸으로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들은 환자의 돌봄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저당 잡힌 삶을 살아간다.


명주와 준성은 가족을 포기하는 대신 끌어안는 삶을 선택한다. 가족을 포기하지 않은 것의 대가는 무척 컸다. 그들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삶을 살아야 했다. 모든 것은 환자가 우선이었다. 스스로의 육체, 정신, 영혼 어느 것 하나 온전하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밸런스가 어긋나는 순간 간신히 유지되던 삶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다.


이 책은 부모, 노후, 간병과 돌봄 같은, 전혀 유쾌하지 않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주제로 우리를 초대한다. 독자들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자신의 삶 따위 없이 누군가를 돌보고 간병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어. 누구나 아플 수 있고, 누구나 아픈 사람 곁에 남겨질 수 있어'라고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것 같다.


소설은 픽션이지만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우리는 미래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다. 우리는 누구나 명주와 준성이 될 수 있다. 만약 내가 주인공과 같은 상황을 겪게 된다면, 버티고 견디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나의 가족이 아프다면, 부모님이나 아내, 자녀의 간병을 위해 풀타임의 돌봄이 필요하다면, 최소한의 생존조차 쉽지 않은 형편으로 남은 삶을 평생 살아야 한다면, 나는 여전히 가족을 사랑하고 지키며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아픈 가족도, 가족을 돌보는 나도 끝까지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저자는 돌봄과 간병에 지친 삶의 민낯을 드러냄과 동시에 누구보다 그들을 응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없이 절망적일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명주와 준성은 각자의 방식으로 소통하고 연대한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 글은 소설의 형식을 빌려 내가 내 자신과 가족들에게 전하는 다짐이자 약속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지독한 아픔, 절망에 가득찬 삶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작가라니. 숨은 고수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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