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은 항상 설렌다. 주말은 기계가 아닌 인간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기러기 아빠가 되면서 금요일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또 생겼다. 사랑하는 가족을 보러 가는 길은 언제나 즐겁고 신난다.
지난 금요일은 유독 분주했다. 끝이 없는 업무를 하면서 동시에 회의도 진행했다. 점심을 먹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운 좋게도 도시락을 먹을 수 있었다. 진즉에 퇴근시간이 지났지만 해결되지 않은 일들에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급적 피곤하더라도 토요일이 아닌 금요일 밤에 부산으로 내려간다. 사랑하는 가족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보고 싶기 때문이다. 시계를 보니 벌써 9시가 넘었다. 토요일 오전에 내려갈까 하다가 편의점 1+1 커피를 하나 사들고 운전대를 잡았다.
"아빠, 오늘 올 거지? 나 아빠 오면 같이 놀다가 잘 거야!"
거실에 불이 꺼져 있었다. 딸아이는 나를 기다리다 잠이 든 모양이다. 11시가 넘었지만 바로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았다. 늦게 커피도 하나 먹었겠다, 이번주까지 송고하기로 한 글을 끼적였다.
회사에서 이미 체력이 방전되었는지 좀처럼 글이 써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초고라도 마무리해야 주말에 조금이라도 고쳐서 송고할 수 있을 텐데. 결국 뒤죽박죽인 글 하나를 쓰고 나니 2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평소와는 달리 다들 분주해 보였다.
"친구집에 가려면 얼른 양치하고 옷 갈아입어야지."
7살 둘째는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친구집에 놀러 간다고 했다. 유치원에 갈 때와는 달리 녀석은 신속하게 밥을 먹고 양치를 한 다음, 알아서 척척 옷을 갈아입었다. 엄마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는 둘째의 발걸음이 무척 경쾌했다.
아내는 오늘 교회 유치부 교사 모임이 있다고 했다. 바닷가에 있는 맛집에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회의를 한다고. 저녁쯤에야 돌아올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집을 나섰다.
토요일에 아빠와 고양이 카페를 가고 싶다던 첫째는 갑자기 친구와 나가서 놀아도 되냐고 물었다.
"물론 되지. 그런데 오늘 같이 놀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잠시 친구와 통화를 하던 딸아이는 친구와 놀고 오겠다는 말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텅 빈 집에 세수도 하지 않은 나만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얘들아 아빠 왔다.. ⓒ픽사베이
토요일 오전에 혼자 남게 되니 처음에는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것은 즐겁지만 대부분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아이들의 놀이가 중심이 된다. 한 주 내내 제대로 쉬지 못해서 피로가 누적된 상태라 적당한 휴식과 함께 개인정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주어진 시간은 대략 5시간 정도. 긴 시간이지만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없기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덥수룩한 머리를 보며 이발소에 가는 대신 병원에 가는 것을 택했다. 목과 어깨가 너무 아픈데 평소에는 병원에 갈 시간을 낼 수가 없으니.
추나치료와 침 치료, 물리치료를 받으니 뭉쳤던 근육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지체 없이 시장통 칼국수집으로 향했다. 국밥과 칼구수에 진심이기에 절대 아무 곳이나 가지 않고 확실히 검증된 곳만 가는 편이다. 집 근처 재래시장 칼국수 가게는 실패 확률이 0%이다.
병원에 갈 시간조차 없다 보니 글쓰기가 자꾸만 밀린다. 주어진 것들도 제대로 처내지 못하는데 마감기한이 빠듯한 다른 글도 하나 더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오늘 새벽까지 끼적이던 초고를 다시 펼쳤다. 내가 써놓고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을 과감히 뜯어고쳤다. 수정할 게 한 두 개가 아니다 보니 시간이 제법 걸렸다. 평소 퇴고를 오래 하는 편이지만 이번 글은 퇴고로도 소생이 힘들 것 같아 과감하게 송고를 해버렸다.
벌써 오후 4시가 다 되어간다. 아이들이 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건조기에 있는 빨래를 꺼내어 개고 매트에 있는 먼지들을 닦았다. 종이와 플라스틱 쓰레기를 정리한 다음 싱크대에 있는 설거지를 하면서 잠시 몸을 움직였다.
잠을 좀 더 자고 싶었지만 시간이 애매했다. 읽고 있던 책들을 마저 읽기로 했다. 작년 겨울 김연수 아저씨의 책을 사놓고 읽지를 못해서 오늘에서야 다 읽었다. 내용으로 독자들을 휘어잡는 작가가 있고 문장 자체가 특색 있고 울림을 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은 후자에 가깝다. 이 작가의 문장은 다정하고 정갈하며 친절하다.
이번 주는 바쁘다는 핑계로 책 읽는 것을 게을리했다. 얼른 읽어야지. ⓒ손수제비
6시가 되어 아내와 딸아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둘째는 친구집에서 저녁까지 먹은 뒤 7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가족들이 모두 들어오니 이제야 내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뜻하지 않게 주말을 혼자 보냈지만 덕분에 휴식을 취하며 밀린 글도 쓸 수 있었던 하루였다. 처음에는 살짝 아쉬울 뻔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이거 혹시 다음 주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