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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제비 May 07. 2024

밥은 묵고 댕기냐

분식집에서 오뎅을 먹으며 들었던 생각들

근 한 달째 허리가 쑤신다. 의사는 아니지만 허리 통증에 대해서는 나름 전문가인데, 본능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음을 느낀다. 통증 완화를 위해서는 꾸준한 근력운동과 스트레칭, 앉은 자세를 피해야 하는데 현실은 종일 앉아 일하며 운동이 없는 삶이 가득하다.


시간에 쫓겨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건너뛴 채 일을 하다 보니 퇴근시간이 지났다. 오늘은 한의원 야간진료가 있는 날. 저녁을 포기하고 지금 바로 병원으로 가면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배고프고 우울하지만 허리 치료를 받을 수 있으니 다행일까.


"왜 한 달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습니까!"


애꿎은 의사 선생님에게 투정을 부렸다. 추나치료를 하며 내 몸에 침을 꽂고 밀고 당기며 한참을 조물락거리던 선생님이 한마디 하셨다.


"특별한 건 없는 거 같은데.. 환자분은 왜 갈수록 피곤해지시는 거 같죠?"


컨디션 저하라고 한다. 쉬지 못하니 피곤할 수밖에. 어린이날 연휴 따위 반납한 지 오래고, 평소에도 쉬지를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인 것일까.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수 십 년은 더 일을 해야 할 텐데 벌써부터 몸이 망가지다니.


치료가 끝나고 주차장으로 가는 도중 그제야 허기를 느꼈다. 그러고 보니 밤 9시가 다 되도록 제대로 먹은 게 없었다. 밥을 먹기는 너무 늦었고 그냥 가자니 아내의 필살기인 "무슨 배짱으로 이 시간에 밥을 안 먹고 들어왔노!" 공격을 받을까 두려워 평소 자주 들르는 분식점에 갔다.


일하시는 이모(할머니에 가까웠다) 2명, 나를 포함한 손님 두 명이 있었다. 내 옆에 있는 고객은 산만한 덩치와 험악한 인상을 장착한 채 입맛을 다시며 흰색 물떡을 야무지게 먹고 있었다. 뜨거운 어묵 국물을  식히지도 않고 원샷으로 들이켜가며.


일하는 이모들과 옆 고객이 계속 대화를 주고받는 바람에 의사와는 상관없이 듣게 되었다. 옆 손님은 배달라이더였는데, 오늘처럼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배달이 많이 없지만 사고가 잘 나서 위험하다고. 대부분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신호를 잘 지키지 않는 거 같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고. 본인도 예전에 신호위반을 하다가 사고 난 경험이 있는데 그 이후로는 두 번 다시 신호위반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평소 운전을 많이 하며 위험천만한 오토바이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라이더들에 대한 인식이 매우 안 좋았다. 부끄럽지만 '도로의 무법자 정도를 넘어서서 인류에 도움이 안 되는 존재들, 돈 몇 푼 더 벌기 위해 신호위반과 시민들의 안전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때로는 했었다. 실제로 사고가 나기 직전까지 간 경우도 더러 있었고.


외모가 중요하지는 않지만 지나가며 본 라이더들의 모습이 썩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길거리에 우르르 몰려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 주소지에 정확히 배달을 하지 못한 채 고객, 점포 사장님과 싸우는 모습도 익숙했다. 이러다 보니 실제로 알고 지내는 라이더가 없으면서도 막연하게 저들에 대한 편견이 내 안에 자라났던 게 아닐까.


비 내리는 늦은 밤에 서서 물떡을 먹고 있는 라이더나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 거라며 이 시간이 되도록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어묵을 먹고 있는 나나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각자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열심히 일하다가 잠시 허기를 달래는 모습은 사무직 직장인이나 현장 배달기사나 도찐개찐인 것을. 혹시 내 옆에 라이더도 물떡이 오늘 첫 끼였으려나.


너무 바빠서 밥을 먹을 시간도, 아픈데 진료를 받을 시간도, 고작 1주일에 한 번 겨우 1시간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조차도 온전하지 못한 내 삶을 보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나와 내 가족의 일용할 양식과 거주, 생활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지만, 당장 미쳐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매일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살아가는 건 제대로 된 삶이 맞는 것일까.


내 옆에서 물떡을 먹으며 이모들과 이야기를 건네는 라이더를 보며 내가 저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던 건 아닌지 되돌아본다. 나는 저들의 난폭 운전에 치를 떨며 욕설을 퍼부었지만, 누군가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교통법규를 더 철저히 지키려 한다는 말을 들으며 앞으로는 일부 모습만 가지고 남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남들처럼 쉬는 연휴는 아니었지만, 오늘 하루도 너무 별로였지만, 진료를 받고 늦게나마 맛있는 어묵을 먹을 수 있음에 작은 위안을 삼아본다. 매일이 고통의 연속이지만, 오늘 하루도 무사히 견디고 일용한 양식을 얻을 수 있음에 감사해보려 한다.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배달하는 라이더도, 칠순을 바라보는 어머니 연배와  비슷해 보이는 분식집 이모님들도, 아프지만 병원 갈 시간을 좀처럼 내기 힘든 나도 모두 파이팅이다. 어떻게든 또 살아지겠지. 내일은 좀 더 웃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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