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책을 읽은 뒤 반응은 대게 2가지로 나뉜다. 작가의 책을 모두 사서 읽거나, 나도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느끼는 것. 글쓰기가 아닌 열망을 느끼는 (것에서 그치는) 이유는 실제 글쓰기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잘'쓰고 싶다는 욕망이 커질수록, 내용과 서사는 사라지고 조급함만 남은 글이 탄생하니까.
잘 쓰인 글은 대부분 일관적이다. 글 전체가 하나의 주제로 매끄럽게 이어진다. 그래서 흐름이 끊어지지 않고 글을 읽을 때 집중이 잘 된다. 책을 덮은 뒤 읽었던 내용을 쉽게 기억할 수 있다.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서 마음에 와닿는 책이 있어서 느낀 점을 써보았다. 오랜만에 매체에 송고하는 글이다 보니 퇴고가 길어졌다. 초고는 쓰레기라 했던가. 분명 내가 쓴 글인데,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나조차도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산이든 바다든 종착역을 정하고 가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을 것처럼 위태위태해 보였다.
예전에는 글을 퇴고하는 게 너무 싫었다. 글이 별로인 것은 알겠는데 정확히 뭐가 어떻게 별로인지 파악이 안 되었다. 그러니 무엇을 수정해야 하는지, 방향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덜어내거나 순서를 바꾸어야 할 필요는 없는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에 글은 계속 읽지만, 반복해서 읽기만 한다고 해서 짠- 하고 글이 변신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언제나 퇴고의 마지막은 토할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글쓰기는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억울함(?)이었다.
초고를 쓰고 대략 10번 정도 다시 읽었다. 글은 산으로 갔다가 다시 바다로 갔다. 불필요한 문장과 반복되는 문장을 정리하니 대략 2천 자 정도가 삭제되었다. 송고의 기준은 최소 2천 자 이상으로 알고 있는데, 다행히 3천 자 가까이 아직 남아 있었다. 더 이상 글을 읽기 싫다는 느낌이 들 때쯤 송고하기 버튼을 눌렀다.
일반적인 작가들과는 달리 나에게 있어 퇴고의 목적은 글을 더 매끄럽게 만들고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닌 최소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 정도이다. 나도 한 번쯤은 화려하고 매끄러운 문장, 힘이 있고 가슴을 울리는 문장을 쓰고 싶지만 사유의 깊이와 구사하는 단어로 보아 아직 100년의 수련은 더 필요해 보인다.
내가 쓴 글을 10번 정도 읽어보며 '이상한 문장'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없어도 될 문장, 있어서는 안 될 문장, 똑같은 표현이 여러 번 반복된 문장들. 10번을 읽으며 10번을 뜯어고치다 보니, 약간 어색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하나의 주제'로 썼다는 느낌이 조금은 드는 글이 하나 나왔다.
퇴고하면서 고통이 아닌 티끌만큼의 뿌듯함을 느끼다니. 0.1mm의 성장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