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으로 하루 연차를 냈다. 아침부터 피를 뽑고 여러 가지 검사를 받으니 피곤이 몰려왔다. 그 와중에 업무 관련 각종 메신저들은 쉬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냈다. 분명히 연차를 썼지만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월요일 오전에 건강검진 예약을 잡은 내가 총 맞을 짓을 한 거다.
수면내시경까지 마무리하니 오후 1시가 다 되었다. 비몽사몽 중에 집으로 돌아와 밀린 업무를 시작했다. 아 맞다. 간호사님이 수면내시경을 하면 뭔가 잘 잊어버리고 집중이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중요한 일은 내일 하라고 했는데.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와중에도 업무 깨톡은 계속 날아오고 있었다.
저녁 5시쯤 되었을까. 생각보다 일찍(?) 업무를 정리했다. 둘째가 유치원에서 복귀한 뒤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 시간에 아빠가 집에 있으니 잠시 어색해하더니 금방 놀이터에 가자고 한다. 비록 더웠지만 오랜만에 둘째를 데리고 놀이터로 향했다.
아파트는 나를 빚쟁이로 만들었지만, 다른 아파트들 가격이 오를 때 소신을 지키기라도 하는 듯 우리 집은 저 혼자 가격이 고꾸라졌지만, 이 아파트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이 많아서이다. 대단지이면서 비슷한 또래가 많다 보니, 하교 후 놀이터에 가면 아이들이 수십 명씩 뛰어놀고 있는 진기한 광경을 볼 수 있다.
놀이터에 갔는데 유치원 친구라도 있으면 1시간 정도는 거뜬히 논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 읽을 책을 가져가는 센스가 필요하지만, 모처럼 이 시간에 놀이터에 나가다 보니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다. 유치원 단짝 친구 P, C를 발견한 둘째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콩벌레를 잡고, 풀밭에 떨어진 매실열매를 줍고, 술래잡기를 하며 행복해하는 둘째를 보니 건강검진과 업무로 인해 받은 스트레스가 다 날아간 것 같다.
벌레 잡는 아이들
밤에는 오랜만에 퍼즐을 맞췄다. 작년 휴직을 하며 아이들과 퍼즐을 참 많이 했었다. 7살 둘째와 하기에는 300피스가 적당하다. 둘이서 하면 넉넉잡아 30분~1시간 정도 소요된다.
지난 주말 동백전 다자녀포인트로 서점에서 퍼즐을 구매했다. 무려 1,000피스를..! 500피스를 사자는 내 말을 듣지 않은 채 둘째는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 사주지 않으면 한 달은 울먹이며 부모를 원망할 것이 불 보듯 뻔했기에, 다음부터 천 피스는 없다고 둘째와 합의하며 퍼즐을 구매했다.
퍼즐을 다 꺼내서 뒤집고 색깔별로 나누는 데만 1시간이 더 걸렸다. 테두리 부분만 맞추는데도 몸이 방전된 느낌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끙끙대며 보내는 시간이 싫지 았았다. 평소에는 학원 숙제를 하거나 TV를 보는 게 대부분이지만, 셋이 모여 함께 집중하는 게 오랜만이라 반가웠고, 퍼즐을 함께 완성시켜 나가는 과정이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