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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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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제비 Jun 18. 2024

감사 10일 차 : 웃음 일발 장전


야간행군을 해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훈련소의 마지막 과정인 만큼 난이도가 높다. 20KG가 넘는 군장을 메고 산을 넘어 다른 지역(道)을 돌아 다시 막사로 복귀하는 과정은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한다. 몇 시간째 무의식적으로 걷다 보면 지금이 몇 시인지,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 멍한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휴식시간이 되기까지는 무조건 걸어야 한다. 숨이 차오르고 다리가 아파도 버티며 발을 내디뎌야 한다. 그때 많이 들었던 소리가 있었다. 주먹 쥘 힘만 남아있으면 된다고. 주먹을 쥘 힘이 있으면 한 걸음 더 내딛을 수 있다고.


늘 그렇지만 업무 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매일 지옥을 경험하다 보니 힘들다고 말을 하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진다. 어쩌다 보니 감사일기를 매일 쓰고 있다. 3주면 습관이 만들어지고 2개월이면 무의식의 영역에 긍정과 감사의 기운이 자리 잡는다고 한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도전하는 중이다. 어차피 맨 정신으로는 하루도 버틸 수 없는 회사이기에.


"힘들어 뒤질 것 같구만, 너 왜 웃고 있냐?"


평소처럼 썩은 표정이 아니라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나에게 팀장이 물었다. 억지로 주문을 외우면서 나도 모르게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나 보다.


"뭐. 웃으믄 좀 더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전과 똑같이 힘들고 죽을 것 같고 때려치우고 싶고 자존감이 떨어지고 그냥 다 내려놓고 싶지만, 그럴 때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한 번씩 씩 웃어준다. 1초만 버텨보자, 한 번만 더 견디어보자는 마인드로. 끝나지 않는 야간행군을 하며 주먹을 쥘 힘만 있으면 한 걸음 더 내딛을 수 있었던 것처럼, 육체와 마음이 으스러질 것 같지만 웃다 보면 하루 일과가 마무리되는 것을 경험한다.


정신승리인지, 마음의 변화인지, 그저 며칠간의 객기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계속 도전 중이다. 어차피 맨 정신으로는 다닐 수 없는 회사이니까. 뇌는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하니까. 식상할 수 있지만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닌, 웃어서 행복하다는 말도 있으니까.


웃다 보면 진짜로 행복해질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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