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상승을 가장 많이 체감하는 순간 중 하나는 점심시간이다. 사무실 인근인 부산역은 밥 먹을 곳이 많으면서 없기도 하다. 역사 안에는 식당이 많지만 너무 비싸다. 관광객들이 호기심을 품고 갈 곳은 많지만, 매일 근처에서 끼니를 때워야 하는 직장인들은 갈 곳이 마땅치 않다.
국밥 1만 원, 밀면 7천 원, 돈가스 8천 원, 김밥/분식류 대략 개당 5천 원, 순두부찌개/백반류 1만 원 내외. 어딜 가도 만족도가 딱히 높지 않다. 최근 사무실 앞 상가 2층에 한식뷔페(라고 적혀있지만 함바집에 가까운)가 오픈했다. 단돈 7천 원에 고기반찬과 샐러드를 포함해 5~6개의 반찬과 밥과 국, 계란프라이와 라면(셀프조리)까지 포함된 가성비가 좋은 식당이다. 고만고만한 맛이지만 주변 어느 식당보다도 가성비가 높은 탓인지 정오가 되면 30평 남짓한 가게가 미어터진다.
며칠새 너무 덥다. 팀장을 모시고 지방 출장 가는 길, 푸념인지 명령인지 모를 말이 깨어나지 않는 주인을 향해 외치는 알람처럼 반복된다.
"아, 맛있는 거 좀 먹고 싶다"
한 두 번 정도하고 그칠 줄 알았는데, 점점 간절함이 짙어지는 목소리로 판단하건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될 것 같았다. 티맵 어플에 나와있는 예상 주행 시간은 70분이었다. 계속 듣고 가다가는 안전운행에 차질이 생길지도 몰랐다.
메뉴선정을 향한 치열한 토론 이후 우리가 택한 메뉴는 '장어구이'였다. 장어를 즐겨 먹지는 않지만 맛이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무더운 여름, 평소 제대로 못 챙겨 먹는데 한 끼 든든하게 먹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8만 8천 원입니다 고객님."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본래 이 음식이 이래 비싼 것이었나. 장어 한 마리에 5~6점 정도 되었는데, 그럼 한 점에 5천 원 정도 한 다는 건가! 입에서 사르르 녹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평소 7천 원에 한 끼 식사를 하다가 2명 기준 88,000원의 점심을 먹으니 기분이 묘했다. 와이프 생일 때 둘이 외식을 해도 나올 수가 없는 비용인데.. 다행히 내 돈은 10원도 보태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맛있었나?
퇴근 이후 파김치가 되어 거실에 누웠는데, 둘째가 갑자기 수박 사러 가자고 노래를 부른다. 덥고 피곤해서 안 나가고 싶었지만, 4시간이 넘는 운전으로 굽은 허리를 좀 펴줘야겠다는 생각에 가족 모두가 마트를 향해 나섰다. 아이들이 수박을 무척 좋아하기도 하고.
집에서 천천히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마트에 가서 큰 수박을 하나 샀다. 낑낑대며 들고 오는 아빠가 힘들어 보였는지 7살 둘째가 같이 들자고 한다. 수박을 구매하면 주는 망을 둘로 나눠 아들과 각각 한 손에 잡은 채 걸어왔다. 그런데 무게는 왜 똑같이 느껴지지?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데.
아들이 무거워하자 다시 수박을 들고 가는 건 내 차지가 됐다.
"아빠, 안 무거워? 왜 아빠만 들어. 엄마 줘. 엄마 힘 세."
낑낑대는 나를 향해 첫째가 말했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딸에게 답했다.
"이런 건 아빠가 드는 거야. 엄마한테 무거운 거 들게 하는 건 못난 아빠나 하는 거지."
파르르 떨리는 손을 어둠에 숨긴 채 최대한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며 걸었다. 평지보다 조금 높은 지대에 위치한 아파트로 가는 길이 오늘따라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지.
터벅터벅 걷다 보니 겨우 집에 도착했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지만 무사히 수박을 들고 오는 데 성공했다. 중간에 살짝 힘들어서 짜증이 날뻔했지만, 스테미너 음식인 장어의 파워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일까. 아주 가끔씩은 이런 보양식을 먹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물론 법카 찬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