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진하 Mar 11. 2023

06. 런던에서 그 와의 첫 데이트

빛나는 런던, 빠져든 사랑

"들어가자."


그와 함께 들어선 레스토랑은 고급스럽고 아름다웠다.


식당 내부의 화려한 유리 천장과 거대한 기둥들은 견고했고,

벽면 전체를 장식하는 커다란 시계는 이 식당의 위풍당당했던 역사를 추억하게 했다.


저녁이라 많은 손님들이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이 슈트를 입고 있었다.

손님들은 바와 레스토랑 구역에 나눠 앉아 있었고, 조명은 로맨틱한 분위기를 한층 더했다.


나는 창문으로 펼쳐진 런던의 멋진 뷰를 바라보며, 스테이크와 그에 어울리는 와인 한잔을 주문했다.


영화 속 한 장면의 여주인공이 되어, 내 앞에 앉은 그와의 첫 데이트를 시작한다.




나는 그를 더 알고 싶은 욕망에, 식사시간 내내 그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그는 오타와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그곳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자유로운 분위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족이 여전히 그곳에 있어서, 가끔은 혼자 고향을 다녀온다고 했다.


웨스트 민스터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현재는 첼시에서 살고 금융회사에 재직 중이라고 했다.


나는 대화 내내 그에게 매료되어 있다가, 문득 정신이 들었다.


“첼시 어디? 나도 호텔이 Earl's Court역 근처야.”


동화같이 계속되는 우리의 우연이 놀라웠고, 이어서 생각했다.


‘넓은 이 도시에서 우리가 이웃이라니. 런던으로의 여행이 로또가 아니라 내 운명이었어?’




밤 8시가 넘어가자,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추위를 피해서 우리는 서둘러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지하철 안에서는 핸드폰 신호가 잡히지 않던 시기였기에,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지하철 안 사람들은 각자만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책을 읽는 사람, 자리에 앉아서 끔벅끔벅 졸고 있는 사람, 시선을 한 곳에 응시한 채 멍하니 생각에 잠긴 사람.


그리고 내 앞에, 행복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며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아까 마신 와인 때문인지, 난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대신, 지하철 안 풍경을 떠올렸다.

각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여기 사람들이 가끔씩 우리를 보고 있을까.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어떻게 보일지 상상하자, 내 마음은 흔들렸다.


이 순간만큼이라도 우리가 연인처럼 비치면 좋겠다는 생각이 마음속을 채웠다.

나는 갑자기 그의 손을 꼭 잡고 싶었다.




우리는 Earl's Court역에 하차했다.   


잔잔한 어둠 속에 거리를 따라 늘어선 황금빛 가로등이 빛나고 있었다.

잠든 나무들이 불빛에 반짝이며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것처럼 보였다.

양쪽 거리를 메운 건물들과 창문을 통해 흘러나오는 따듯한 조명은 빛의 터널처럼 보였다.


이곳의 밤거리는 어릴 적 엄마가 들려주던 동화 속 세상을 연상케 했다.


그리고 나의 발걸음 보폭을 맞추며 걷는 그가 옆에 있다.

런던의 밤에 그가 낭만을 더 했다.




호텔에 다다르자 나는 어디에서 용기가 나온 건지, 수줍게 말했다.

“잠깐 손 줘봐.”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손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이 내 가슴을 채웠다.


그 순간, 나는 문득 정신이 들었다.

차마 그를 바라볼 용기는 없으면서도, 그의 손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저 덥석 잡은 우리 손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내일 주말인데 뭐 해? 아침에 같이 하이드파크 산책할래?”


예상치 못한 그의 질문에, 나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나를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