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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상처가 남기는 선물

by 한끗
1. 상처의 초대



상처는 누구도 원하지 않는 손님처럼 다가온다.

우리는 언제나 웃음을 원하고, 평안을 원하고, 행복만이 우리 곁에 머물기를 원한다. 그러나 삶은 늘 예측을 배반한다. 사랑하던 관계가 금이 가고, 믿었던 사람이 등을 돌리고, 기대하던 길이 무너질 때 상처는 비로소 얼굴을 드러낸다.

그때 우리는 상처를 부정한다.

“이건 불필요한 고통이야.”

“이런 일은 없어야 했어.”

하지만 부정한다고 상처가 사라지지 않는다. 상처는 삶의 일부로, 우리의 시간 속에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된다. 상처는 단순한 불청객이 아니라, 우리를 성장의 방으로 이끄는 초대장이었다는 사실을.




2. 상처가 가르치는 멈춤의 지혜

상처는 우리를 멈추게 한다.

평소 같으면 달리기 바쁜 삶 속에서, 잠시도 쉬지 못하고 앞만 보던 발걸음을 강제로 멈추게 한다.

그 멈춤은 불편하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비로소 내 안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상처는 우리를 고요 속으로 데려간다.

그 고요 속에서 우리는 묻는다.

“나는 누구였나?”

“나는 어디로 향하고 있었나?”

“나는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가?”

이 물음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선물이다.

상처가 없었다면, 우리는 평생 묻지 않았을 질문이기 때문이다.




3. 상처가 남기는 흔들림

흔들림은 불안정과 실패의 다른 이름처럼 보인다. 그러나 삶에서의 흔들림은 필연이며, 동시에 축복이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뿌리는 자라지 않는다.

파도가 없는 바다는 고요하지만, 그 속에는 생명이 살지 못한다.

상처는 우리를 흔들리게 한다.

우리가 지켜온 확신을 무너뜨리고, 익숙한 일상을 뒤흔든다.

그러나 바로 그 흔들림이 우리를 성장시킨다.

흔들림은 불완전의 증거가 아니라, 살아있음의 증거다.

상처가 남기는 흔들림은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단단히 뿌리내리게 만든다.




4. 상처의 부드러움

상처는 강인함만을 남기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를 겪은 사람일수록 더 부드럽다.

누군가의 눈물이 내 눈물을 불러내고, 누군가의 아픔이 내 아픔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내 안에 이미 같은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상처는 나를 이기적인 존재에서 타인의 존재를 느낄 줄 아는 사람으로 바꾼다.

“나는 아팠으니, 너의 아픔을 안다.”

이 말은 위로의 본질이다.

상처는 결국 우리에게 공감이라는 선물을 남긴다.




5. 상처는 흉터가 아니라 기록이다

흔히 우리는 상처가 남긴 흉터를 감추려 한다.

보여주기 부끄럽고, 다시 떠올리기 싫고, 지워버리고 싶다.

하지만 흉터는 수치가 아니다. 흉터는 시간의 서명이고, 내가 지나온 길의 증거다.

흉터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무너졌지만, 다시 일어났다.”

“나는 쓰러졌지만, 여기까지 걸어왔다.”

상처가 흉터로 남을 때, 우리는 그것을 통해 자신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흉터는 고통의 흔적이 아니라, 회복의 기록이다.




6. 시간이 보여주는 선물

상처를 당하는 순간에는 그 고통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다.

아무리 애써도 선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상처는 조금씩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상처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동시에 나를 따뜻하게 만든다.

과거의 나는 모르는 길을 서두르며 살아갔다면, 상처 이후의 나는 발걸음을 늦추고, 곁을 돌아본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것들이 더는 사소하지 않게 보이고,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상처가 아니었다면 얻을 수 없는 시선, 그것이 상처가 남기는 선물이다.




7. 상처라는 거울

상처는 거울처럼 우리를 비춘다.

아픔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본다.

동시에, 상처는 또 다른 얼굴을 비춘다.

그 연약함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강인하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상처라는 거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너는 무너질 수 있는 존재이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바로 이 이중성, 연약함과 강인함의 공존이 상처가 남기는 진짜 선물이다.




8. 상처의 미학

상처는 결핍의 흔적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또 다른 이름이다.

완벽히 매끈한 돌보다, 깨어지고 닳은 돌에서 더 깊은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상처 없는 얼굴보다, 상처를 지나온 눈빛이 더 큰 울림을 준다.

흔들림의 미학은 상처의 미학이기도 하다.

흔들림이 있었기에 단단해졌고, 아픔이 있었기에 부드러워졌다.

상처가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의 모습으로 설 수 있었다.




9. 상처가 남기는 선물

결국 상처가 남기는 선물은 단순한 회복이나 성장에 그치지 않는다.

상처는 우리에게 삶을 더 깊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남긴다.

상처는 우리에게 타인을 끌어안을 수 있는 품을 남긴다.

상처는 우리에게 흔들림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를 남긴다.

상처가 없다면 우리는 삶의 무게를 알지 못한다.

상처가 없다면 우리는 사랑의 깊이를 알지 못한다.

상처가 없다면 우리는 인간다움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상처는 고통이 아니라 선물이다.

그 선물은 아픔의 얼굴을 하고 다가오지만, 시간이 지나면 삶을 가장 빛나게 하는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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