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독립 근육 키우기 #7
초등학교 3학년인 첫째 책장에는 수학, 국어 문제집이 없습니다. 별도로 구입한 국어, 수학 교과서가 집에서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학습 도구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바깥에서 친구들과 땀 흘리며 노는 것이 다른 어떤 교육보다 중요하고 공부는 아이가 원할 때 하는 것이 더 맞는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아이가 원할 바로 그때가 몇 주 전 찾아왔습니다.
교과서 한 단원이 끝날 때마다 시행되는 단원평가는 첫째 아이 스스로 자신의 실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국어 점수 85점, 수학 점수 65점.
저는 첫째와 조용히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시원이는 이번 시험 성적 보고 어떤 느낌이 들었어?”
“조금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
“그래? 그런데 시원아 공부는 잘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는 잘할 수는 없어, 아주 조금씩 노력을 하고 연습을 해야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 거지. 시원이가 게임하는 것처럼. 다음 시험엔 70점 목표로 공부해볼래? 엄마가 도와줄게"
“응 그럼 한번 해 볼게"
저는 첫째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싶어 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1학년 때 짝꿍이 좋다는 아이. 그 이유를 물어보니 공부를 잘해서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친구가 부럽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그땐, 공부를 잘하고 싶지만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번 단원평가는 저희 아이에게 이젠 공부를 해야겠다는 방아쇠가 되었습니다.
그럼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지? 학원을 보내나? 문제집을 사서 풀어야 하나? 여러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단순히 시험 점수를 높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공부의 첫 경험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독립 근육을 키워주고 싶었습니다.
“매일 수학 딱 한 문제씩 푸는 건 어때?” 아이는 동의를 했고 매일 수학 한 문제씩 풀기로 약속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아이와의 약속을 구체적으로 정했습니다.
[매일 한 문제씩 풀기, 저녁 7시에 하기]
그 아래 외적 보상도 정리했습니다.
[10장 채우면 500원짜리 딱지, 공책 한 권 채우면 원하는 스티커]
사실 외적 보상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내적 보상이 아이에게 더 중요한데 혹시 외적 보상이 없어지면 공부하고 싶은 마음까지 사라지면 어쩌지? 그럼 이런 걸 하는 의미가 없어지는데?
하지만 남편의 말 한마디에 외적 보상이 꼭 부정적 영향만 주는 것이 아니란 걸 깨달았습니다.
“회사 다닐 때 내적 보상이 중요하다고 일만 하라고 하면 좋아? 가끔 보너스도 주고 외적 보상을 줘야 일할 맛도 나고 거기서 내적 보상도 채워지지. 너무 습관적이지만 않으면 가끔씩은 줘도 될 거 같은데”
저의 외적 보상에 대한 가치관을 180도 바꾼 예시였습니다.
첫날 문제는 아주 쉬운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공부에 대한 첫 경험이 좋으면 좋겠단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다음날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전날보다 어려운 문제, 바로 단원평가에서 틀린 문제 하지만 혼자 실력으로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를 빈 종이에 적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점점 힘들어하더니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맙니다.
“엄마 나 힘들어, 다음에 풀면 안 될까?”
“아니 오늘 꼭 풀어야 돼, 우리 약속했잖아”
“엄마는 나를 힘들게 하려고 해, 내가 힘들다는데 자꾸만 하라고 해”
엉엉 소리를 내며 거실 바닥에 누워 서글프게 울어버립니다.
불과 몇 달 전이었다면 힘들면 다음에 해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습니다. 대신 아이에게 왜 이 문제를 끝까지 풀어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아. 힘들고 하기 싫다고 계속 울고 드러누우면 어른이 되어서도 힘들 것 같은 문제는 시도도 하지 않고 포기하게 돼. 틀리더라도 끝까지 해보고 왜 틀렸는지 알아가면서 배우면 성장하는 거야.
엄마는 너에게 고통을 주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중에 너 혼자 모든 걸 해야 하고 힘든 일이 생길 때 스스로 그걸 극복할 수 있도록 어릴 때부터 근육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바로 엄마가 해야 할 일이야.
지금처럼 시원이 혼자 하다 잘 안되면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도 배워야 돼. 혼자만 끙끙 앓다 포기하지 말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솔직히 이야기하고 도와 달라고 하는 것도 어른한테도 필요한 거고, 어른이 됐는데 도와달라고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아”
“그리고 이건 딱 한 문제야, 한 장도 한쪽도 아니고 딱 한 문제야. 이 한 문제를 끝까지 하지 않으면 더 많은 문제를 포기하게 될 거야. 엄마는 우리 시원이가 힘들면 미리 포기하는 아이로 자라지 않고 하고 싶어”
내가 말한 것들을 충분히 이해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다시 탁자 위에 놓인 공책 앞에 앉아 이야기합니다.
“엄마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도와주세요”
그렇게 매일 한 문제 풀기는 한 달이 거의 다 되어 갑니다.
10장을 거의 채워 나갈 때 즈음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부러워?”
“아니 이젠 안 부러워”
“어? 왜?”
혹시나 아이가 공부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 공부 잘하는 친구가 더 이상 부럽지 않다고 하는지 찰나의 걱정.
“나도 이젠 그 친구처럼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얼마 전까지 못하겠다고 바닥에 울며 드러누웠던 아이에게서 이런 말을 듣다니.
이보다 더 듣기 좋은 말이 있을까요?
매일 한 문제 풀기를 시작한 이유는 많습니다. 그중 꾸준함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꾸준히 한다는 것이 세상 어느 것보다 어렵다는 걸 성인이 되어 더욱 실감하고 있습니다. 다 채우지 못한 다이어리, 1월 1일마다 시작하는 다이어트와 운동, 매일 2000자 글쓰기. 작심삼일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겠지요.
한 문제 가지고 뭘 얼마나 배우겠어? 하지만 그 한 문제를 통해 아이가 독해가 부족한지, 받아 내림이 부족한지, 단순 암산 실수인지, 부족한 부분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할 수 있습니다. 아이 스스로 한 문제를 집중하며 깊이 생각할 기회를 주기 때문에 사고력 확장할 시간적 여유를 스스로에게 줄 수 있습니다.
매일 한 문제를 푼 지 한 달 정도가 지난 지금 다행히 아이는 잘 따라오고 이젠 스스로 공부하고 싶은 것이 생겼습니다. 아이 혼자 영어 학원도 찾고 그곳을 다니기로 결정도 하게 됐습니다.
지식 쌓는 것만 주위를 기울이면 공부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삶의 지혜를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른이 되어 힘들게 배운 꾸준함의 중요성,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아는 메타인지, 포기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이루면 생기는 자존감. 만약 매일 한 문제로 이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시도해보실 의향이 있으신지요?
제가 좋아하는 프로그램 [유퀴즈], 나영석 피디의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