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빵웅, 너로 정했어!

몸통 박치기이이이!!

by 진하하하하

#1

빵웅까지 썽태우를 타고 가기로 결심했다. 현지인들에게 물어물어 아침 9시에 출발한다는 썽태우를 찾았다. 썽태우 기사는 비범하게 생겼다. 얼핏 보기엔 히피 같았다. 은은한 흰머리를 길게 기른 남자는 도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사람이 썽태우를 몬다는 게 신기했다. 여태껏 썽태우 기사를 많이 보았지만 저런 느낌을 풍기던 기사는 한 명도 없었다. 빵웅도 흔하지 않은 지역인데 운전하는 사람도 흔하지 않았다.

9시에 내가 첫 번째로 썽태우에 올랐다. 그리고 아주머니 두 분과 젊은 여자 한 명이 탔다. 그들의 옷차림이 나와 많이 달랐다. 나는 원피스에 남방을 걸치고 있었고, 그들은 패딩 점퍼에 목도리에 완전 무장을 하고 있었다. 순간 아차 싶었다. 북쪽으로 가는 건데 이곳보다 더 추울 게 분명했다. 한국에 있던 수면바지가 그리워졌다.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추웠다. 태국이 따뜻한 동남아라는 말은 순 거짓말이었다.

매홍손의 명성답게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갔다. 미얀마 국경과 가까울수록 가파른 산길은 오토바이를 타지 않길 잘했다고 위안을 하기도 했다. 9시에 출발했던 썽태우는 11시 20분이 돼서야 빵웅에 도착했다. 긴 여정이었다. 이제 빵웅을 살짝 둘러보고 시내로 나갈 썽태우를 타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빵웅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차에 타기 시작했다.


“바로 시내로 가나요?”

“네. 무슨 일 있어요?”


하하하. 미치겠네. 2시간 20분 동안 거침없이 달렸으면 10분이라도 쉬어야지. 바로 출발이라니 웬 말인가. 자동차도 피곤하다고.


“빵웅 구경하러 왔는데 이다음 차 시간표 알고 계세요?”

“내일 이 시간에 있어요.”


?! 뭐, 뭐라고? 동공지진이 일어났다. 생각이 뚝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웹툰처럼 물음표와 느낌표가 두둥 하고 나타났다. 하루에 1회 운행은 너무하지 않는가. 빵웅 가는 썽태우를 알아보면서 싸한 기분이 있었지만 직접 현실이 되니 어안이 벙벙했다. 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당장 1분 안에 결정해야 했다. 남을 것인가. 다시 돌아갈 것인가.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순 없다. 호수를 거닐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다. 괜히 이른 아침에 일어나 준비했던 게 아니란 말이다. 나에겐 꿈이 있어요. 「거위의 꿈」을 속으로 열창하며 썽태우에서 내렸다.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2

빵웅은 태국의 스위스라 불리는 곳이었다. 커다란 키를 자랑하는 소나무가 호수 주변에 널리 분포되어 있고 잔잔한 수면에 풍경이 담겨 있었다. 평화로운 이곳을 걷다 보면 나뭇가지에 부딪히는 바람 소리,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자연과 어울리기 위해 캠핑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대부분 이곳에 텐트나 방갈로가 있어서 빵웅에서 1박 하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볼 수 있는 풍경도 색다르다고 하는데 차마 볼 기회가 없어 아쉬웠다.

풍경도 풍경이지만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찍는 사진이 하나 있다. 바로 블랙 스완이다. 한국말로 직역하면 검은 백조다. 사람들은 꼭 검은 백조를 사진에 담아 가려고 한다. 그만큼 명물 중 명물. 쉽게 볼 수 있는 새가 아니기에 보게 된다면 절로 카메라를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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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곳에 검은 백조와 흰 백조가 있다. 호수를 구경하면서 두 종류의 백조를 보았다. 한 컷에 다 담으려고 했지만 서로 친하지가 않아서 동떨어져 있었다. 결국 흰 백조는 날아가 버리고 검은 백조만 찍게 되었다.

내 앞에 검은 백조 2마리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희귀한 동물이라 나 역시 카메라를 들고 백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10분 넘게 30장 정도 찍으면서 느꼈다. 이리 찍나 저리 찍나 다 비슷비슷한 포즈였다. 백조 2마리가 하는 거라곤 주둥이를 잠깐 물속에 박았다가 뗀다. 이게 뭔가 싶을 정도로 검은 백조는 재미없었다. 둘이 예쁘게 포즈를 잡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다양한 행동을 해서 관찰하는 맛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 난 그냥 의자에 앉아서 풍경이나 더 봐야겠단 생각으로 뒤돌아섰다.

막막하다. 어떻게 돌아가지. 거위의 꿈은 개뿔. 여기서 하룻밤 자면 돈이 이중으로 든다. 아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좋은 풍경을 즐기는 것도 순간이었다. 히치하이킹이나 해 볼까. 여기까지 왔는데 반락타이를 안 보는 것도 맘이 좋지 않았다. 매홍손까지 가는 건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만 반락타이 가는 썽태우는 있을 수 있다. 혹은 다른 교통편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희망을 품고 현지인에게 물어보았다.


“반락타이 가는 방법 알아요?”


빵웅에 있던 현지인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난처하다는 표정이었다. 난 저 표정이 뭔지 안다. 못 알아들었다. 그래, 걷다 보면 나올 거야. 난 빵웅을 눈 속에 담고 길을 나섰다.


#3

5분 정도 걸어서 빵웅을 나오니 게스트하우스와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었다. 여기에서 여행객들이 잠을 자나 싶었다. 밥이나 먹을까 생각하고 둘러보았지만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커피숍 하나를 발견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대나무가 인상적이었다. 곳곳에 작은 방갈로가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나가려는 순간 달그락 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내 목소리에 중년 남자 한 명이 나왔다. 커피숍 사장님이었다. 그는 나를 보고 반가워하며 카페테리아로 인솔했다. 커피숍 입구에서 커피를 만든다고 했다. 나는 스툴에 앉아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다행히 영어가 통하는 사장님이었다.


“직접 커피 내리시는 거예요?”

“네, 제가 직접 키운 커피예요.”


직접 키운 커피라니. 꿈만 같다. 그러고 보니 빵웅이 커피로도 유명하다는 인터넷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오래전 대마초 재배가 활발했던 도시였지만 지금은 커피를 재배하도록 국가에서 장려하고 있었다. 그는 직접 키운 커피를 내려주었다. 강렬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취했다. 한 모금, 한 모금 마실 때마다 고소한 맛이 느껴졌다.


“방금 뭐하고 계셨던 거예요?”

“게스트하우스 만들고 있었어요.”


1년 뒤에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할 예정이라 했다. 전기와 수도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사장님은 계획이 있었다. 나는 주변을 살펴보면서 이곳은 명소가 될 거라 예감했다. 커다란 대나무, 흐르는 강, 캠프파이어할 수 있는 터, 맛있는 커피. 매력 터지는 게스트하우스가 상상되었다. 나는 다시 빵웅에 오게 된다면 이곳에 머물겠노라 약속했다. 그러면서 사장님 얼굴을 그려서 선물로 주었다. 그는 나의 작은 선물에 기뻐했다. 이게 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하며 내 기분도 좋아졌다.


“그런데 반락타이 가는 방법 알고 계세요?”

“차 가지고 오셨나요?”

“아뇨. 썽태우 없나요?”


난처하다는 표정이었다. 난 사람을 난처하게 하는 재주가 있나 보다. 하하하.


“그럼 매홍손 시내로 가는 차는 없나요? 여기서 더 내려가면 마을 하나 있었는데 거기선 없나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반락타이까지 가더라도 시내로 가는 버스가 없다면 무용지물이었다. 그냥 시내로 빨리 빠지는 게 상책이라 생각이 들었다.


“잘 모르겠네요. 그런데 지나가는 관광객 버스가 좀 있어요. 그분들에게 태워 달라고 부탁하면 되겠네요. 만약에 여기에 들르는 관광객들이 있으면 부탁해 줄게요.”

“정말 고마워요!”


사장님의 성격이 좋아서 빈말이라도 저런 말을 꺼내 주시다니 위안이 되었다.


“말 잘 부탁해요. 동양인 여자 한 명이 시내까지 걸어가고 있다고. 터덜터덜 걷고 있으면 그 사람이라고.”


서로 낄낄거리며 커피를 마시고 입가심으로 차이티도 한 잔 마셨다. 슬슬 나도 걸어가야 했다. 다음을 기약하고 길을 나섰다.


#4

한마디 말이 기운 나게 했다. 히치하이킹할 수 있도록 커피숍 사장님도 응원해 주었다. 숲길을 걸어도 힘들지 않았다. 불쌍한 나를 태워줄 누군가를 기다리며 걷고 또 걸었다.

나는 차 소리가 들리면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았지만 쌩하고 무심하게 지나가는 차들뿐이었다. 십여 분을 걷다가 어느 오토바이가 나를 지나갔다. 나는 역시나 본능적으로 시선이 오토바이에 향했다. 그 사람도 나를 보았는지 드르르륵 속도를 줄였다. 그리곤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재빨리 그 사람을 향해 뛰어갔다.


“저기 어디까지 가세요?”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다음 마을까지 데려다주실 수 있어요?”

“좋아요.”


아싸. 성공이다. 매홍손 시내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기엔 염치가 보였다. 최대한 썽태우가 다닐 만한 마을까지 어떻게서든 가보자.

오토바이를 타면서 잡담을 즐겼다. 이름이라든가 하는 일이 무엇이라든가 여러 가지 물어보았다. 이름은 ‘훗’이었고 옷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차를 팔기도 한다고 했다. 태워다 주는 고마움에 그가 팔고 있다는 차를 구입하고 싶다니까 매홍손 시내에서 사란다. 조금은 허탈했다.

다음 마을에 도착해서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이 마을에 무슨 일로 가냐고 물어보았는데 매홍손 시내로 가는 썽태우를 타려고 한다고 말했다.


“썽태우 없어요.”


썽태우 없다는 말을 지긋지긋하게 들어서 그런지 감흥이 별로 없었다. 지도를 보여주며 조금 더 아래에 있는 마을까지의 거리를 물어보았다.


“여기까지 가는 썽태우도 없나요?”

“네. 거기까지 태워다 드릴게요.”

“고마워요.”


얼떨결에 오토바이를 더 얻어 탔다. 쭈욱쭈욱 내리막길을 내려가 다음 마을에 도착했다. 고마워서 사례하고 싶다니까 괜찮다며 극구 사양하는 훗에게 그러면 음료수 하나 고르라고 부탁했다. 너에게 뭐라도 해 주고 싶어서 그렇다. 그렇게 해야 내가 행복해질 것 같다 이런 문장들을 섞어가면서 말이다. 이렇게 말했는데도 사양하던 그에게 코카콜라 두 캔을 건넸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 미안.

그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호의를 더 베풀었다. 구멍가게 주인에게 태국말로 얘가 매홍손 시내로 내려가려고 하는데 혹시 내려가는 차가 있으면 양해를 구해달라며 부탁해 주었다. 감동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못난 나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훗은 그렇게 자신의 마을로 되돌아갔다.

가만히 멍하니 있자니 시간이 계속 흘렀다. 호수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던 탓에 바데리는 방전되었다. 지금이 몇 시인지 궁금했지만 태국말을 못 하는 내가 할 수 있는 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멍. 멍. 멍. 햇살은 여전히 따사로웠다. 이대로 있다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을 못 자는 건 아닌가 염려스러웠다. 그런 생각이 들자 심장이 요동쳤다. 쿵쿵쿵. 피가 빠르게 흐르는 게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주체할 수 없는 요동에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주변이라도 둘러봐야겠다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작게 관광안내소를 발견했다. 반가운 나머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썽태우를 타고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관리자와 인사를 나누었지만 영어가 전혀 안 통했다. 의사소통에 미스가 있었다. 관리자는 내가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매홍손 시내까지 가고 싶다고 이해했다. 아니다. 아니라고. 그런데 그걸 부정하면 내려갈 기회를 놓치게 된다. 비용을 물어보니 400바트였다. 내가 만약에 오토바이 투어를 했으면 1,200바트를 썼을 텐데 이 정도면 양반이라고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400바트면 맥주가 몇 캔이야. 아니야. 그러지 마. 맥주로 계산하면 한도 끝도 없어.’


자꾸 떠오르는 맥주캔을 애써 외면하고 오토바이에 탔다. 1km에 내 맥주가, 1km에 마셔보지 못한 맥주가, 1km에 내 돈이... 썽태우로 올라왔던 길을 오토바이로 내려가니 아찔한 순간이 꽤 있었다. 다행히 베스트 드라이버 덕분에 무사히 시내에 도착하게 되었다. 400바트가 아깝지 않았다. 나는 살아서 내려왔다는 안도감에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고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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