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도 그려지지 않고
괜히 마음만 싱숭생숭한 하루-
이러고 있단 오늘 하루 통째로 날려먹겠다 싶어
바리바리 싸들고 동네 커피숍으로 출동했습니다.
울렁증 더하기 수전증까지 장착한 관계로
카페 드로잉은 꿈도 못 꾸고요.
좋아하는 책 필사하면서 방황하는 마음 좀 잡아볼까 했었죠.
커피숍 문을 열자마자 들려오는
Sia 노래(꺅- 샹들리에~♬)에
으흥흥~ 했던 것도 잠시
커피 한 모금 마시기가 무섭게 등장하신
(유명 아웃도어로 중무장한) 아주머니 여섯 분에 심상찮은 기운을 느꼈습니다.
내부를 쓰윽 훑는 눈빛들이 꽤나 전투적이시더라고요.
잘하면 한 판 뜰 작정인 분위기랄까.
왜들 저러셔?
곗돈 들고 나른 계주가 여기 나타나기라도 했나?
우려 반 호기심 반으로 눈치를 살피는 제 뒤로
자리 잡은 아주머니들이 앉자마자 쏟아낸 단어들은
빨갱이! 빨갱이! 빨갱이!!
아놔-
살면서 빨갱이를 그렇게 많이들은 날은
오늘이 처음이었어요.
한 시간 넘게 찾으시더라고요. 빨갱이를..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도 아니고 이건 뭐-
친구 집에 모인 것도 아닌데 거의 웅변 수준으로 목청껏 외치시더군요.
옆 테이블 아가가 그 기세에 놀라
자지러지게 울 정도였습니다.
그분들 말씀에 의하면-
행여나 당선될까 그분들이 질색팔색 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를 곱게 포장해서 북한에 통째로 넘겨준다나 봐요.
뼛속까지 빨갱이인 그 후보를 몰라보는 젊은것들도 똑같은 빨갱이래요.
빨갱이를 한 시간 넘게 들었더니
눈앞에 빨간 점들이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필사고 뭐고-
애가 울잖아요! 항의했다가
시국이 이 모양인데 그깟 애 우는 게 대수야?!!
되려 쌍욕을 날리시는 아주머니들에게 쫓겨난 젊은 엄마들처럼
저도 짐 챙겨 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필사는 못했지만
이렇게 막혀있던 그림을 그려 올려요.
소재를 제공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