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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질랜드 외국인 Jan 05. 2017

비오는 날의 트램핑

나는 비 오는 날에 하는 트램핑이 좋다

트램핑에 날씨는 아주 중요하다. 

아무리 같은 장소를 방문하더라도 날씨가 다르면 그 날 산행의 분위기와 트램퍼*(트램핑을 하는 사람)의 기분을 좌우 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맑은 날은 트램핑 하기 가장 안전하고 높은 산에서의 전망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해주고 밤에는 쏟아지는 별들을 보여준다.

케플러 트랙 중에 찍은 사진


비가 오는 날은 산에서 곧장 떨어지는 폭포를 보여주고, 토독토독 레인자켓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있자면 기분이 좋다.

밀포드 트랙에서 찍은 사진


구름이 낀 날은 뜨거운 해의 자극대신 시원한 기운을 만들어 트램핑을 수월하게 해주고 신비스런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케플러 트랙에서 찍은 사진


날씨가 추워 눈이 내린 날의 트램핑의 위험요소는 크지만 밟는 눈의 깊이 만큼 느껴지는 소복함은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통가리로 크로싱을 하던 중에 찍은 사진



작년 이 맘때쯤 생각 할 시간이 필요 해 같이 온 친구들을 뒤에 두고 혼자서 걸었던 적이 있었다. 아침 7시 즈음이였고 다른 사람들은 아직까지 헛(Hut)에서 자고 있거나 준비하고 있던 시간이였다. 밖에는 옅게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아무도 없는 숲으로 혼자 그 헛(Hut)을 조용히 벗어났다.


숲을 20분 쯤 걸었을까, 숲으로 가려져 있던 시야가 확 넓어지면서 안개가 산을 뿌옇게 덮고 있는 광경이 펼쳐지는 모습을 보자 나는 '허' 하며 속 안의 응어리가 터지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울고 싶어져서 울먹거렸다. 전 날 해에 쨍쨍 쬐이며 받았던 뜨거웠던 것들과 스트레스, 그와 나눴던 알고 싶지 않았던 대화, 모두의 휴가를 망치지 않기 위해 감정을 막아야 했던 것들이 속 안에서 뿜어져 나온 것 같았다. 



울먹거리는 소리를 내며 빗 소리와 함께 한 동안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또 괜찮아졌다. 이번에도 이렇게 지나가겠지 하면서. 



그 때의 기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부슬비가 내리는 날씨의 트램핑을 좋아한다. 굳이 높이 올라가 경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비를 피하지 않아도 좋은 정도의 수량, 스트레스 주지 않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자욱하게 낀 안개. 


뉴질랜드의 모든 날씨는 트램핑을 하기에 아름답다. 다만, 트램핑을 하는 자신의 마음.

루트번 트랙에서 찍은 아름다운 사진




* 트램핑(Tramping) - 트램핑은 뉴질랜드에서 하이킹(Hiking)이나 등산 대신 쓰는 단어

* 모든 사진은 제가 찍었습니다 (제가 나온 사진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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