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 오는 날에 하는 트램핑이 좋다
트램핑에 날씨는 아주 중요하다.
아무리 같은 장소를 방문하더라도 날씨가 다르면 그 날 산행의 분위기와 트램퍼*(트램핑을 하는 사람)의 기분을 좌우 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맑은 날은 트램핑 하기 가장 안전하고 높은 산에서의 전망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해주고 밤에는 쏟아지는 별들을 보여준다.
비가 오는 날은 산에서 곧장 떨어지는 폭포를 보여주고, 토독토독 레인자켓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있자면 기분이 좋다.
구름이 낀 날은 뜨거운 해의 자극대신 시원한 기운을 만들어 트램핑을 수월하게 해주고 신비스런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날씨가 추워 눈이 내린 날의 트램핑의 위험요소는 크지만 밟는 눈의 깊이 만큼 느껴지는 소복함은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작년 이 맘때쯤 생각 할 시간이 필요 해 같이 온 친구들을 뒤에 두고 혼자서 걸었던 적이 있었다. 아침 7시 즈음이였고 다른 사람들은 아직까지 헛(Hut)에서 자고 있거나 준비하고 있던 시간이였다. 밖에는 옅게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아무도 없는 숲으로 혼자 그 헛(Hut)을 조용히 벗어났다.
숲을 20분 쯤 걸었을까, 숲으로 가려져 있던 시야가 확 넓어지면서 안개가 산을 뿌옇게 덮고 있는 광경이 펼쳐지는 모습을 보자 나는 '허' 하며 속 안의 응어리가 터지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울고 싶어져서 울먹거렸다. 전 날 해에 쨍쨍 쬐이며 받았던 뜨거웠던 것들과 스트레스, 그와 나눴던 알고 싶지 않았던 대화, 모두의 휴가를 망치지 않기 위해 감정을 막아야 했던 것들이 속 안에서 뿜어져 나온 것 같았다.
울먹거리는 소리를 내며 빗 소리와 함께 한 동안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또 괜찮아졌다. 이번에도 이렇게 지나가겠지 하면서.
그 때의 기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부슬비가 내리는 날씨의 트램핑을 좋아한다. 굳이 높이 올라가 경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비를 피하지 않아도 좋은 정도의 수량, 스트레스 주지 않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자욱하게 낀 안개.
뉴질랜드의 모든 날씨는 트램핑을 하기에 아름답다. 다만, 트램핑을 하는 자신의 마음.
* 트램핑(Tramping) - 트램핑은 뉴질랜드에서 하이킹(Hiking)이나 등산 대신 쓰는 단어
* 모든 사진은 제가 찍었습니다 (제가 나온 사진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