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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Mar 16. 2017

타인의 취향


나는 좀 희귀한 암을 가지고 있다. 척추 뼈와 뼈를 싸고 있는 근육에 암이 생긴 경우인데 장애를 가져올 확률이 높아 근육에 붙은 암만 제거하고 살아가는 중이다. 다시 말해 뼈 속에 핵폭탄 같은 종양을 달고 살고 있다. 겉으로는 아주 멀쩡한, 수술 후에 살이 많이 쪄서 오히려 건강해 보이는 모양새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에도 울고 웃는 아주 예민한 환자다. 


작년 여름, 정기 검진 중 폐에 이상이 있다는 검사 결과를 받았다. 폐암 전이를 의심해 볼 수 있는 상황이라 했다. 심장이 또 덜컥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조직검사를 하기 어려워서 재검사 후 크기 변화가 있으면 바로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3개월 후로 검사 일정을 잡아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내 머릿속엔 ‘폐암’이라는 단어가 한가득 들어차게 되었다.


폐암에 관련된 정보를 찾고, 책을 읽고, 좋다는 것을 먹고, 겁에 질려 울다가 CT에 찍혔지만 별 거 아니었다는 글을 읽고 웃기도 하는 시간이 쭉 이어졌다. 그리고 이때부터 담배를 의식하는 습관이 생겼다. 만약 내 몸 안에 있는 것이 폐암이라면 전이성 폐암이라 간접흡연이 큰 의미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아주 적은 가능성이라도 피하고만 싶었다. 그래서 늘 전방을 주시하고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발견하면 조금 거리를 두고 조금 빠른 속도로 길을 걸었다. 그래도 한 곳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인정한다. 다만 걸어가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마주하기가 다소 힘들었다. 미리 예측하지 못해 피할 수가 없고 꽤 길게 직접적으로 연기를 맡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거리에 나보다 더 중한 폐암 환자가 분명 있을 거란 생각에 화가 나기도 했었다.


흡연자의 권리도 중요하다. 담배는 기호식품이니 자신이 원한다면 얼마든 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새는 흡연자의 권리가 매우 줄어들어 어디서든 담배를 필 수 없는 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나의 취향이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나는 타인의 취향을 비난하거나 막고 싶진 않다. 흡연자가 죄인처럼 인적 드문 골목을 찾아 헤매는 것도 서로 불편하게 만든다. 눈살을 찌푸리며 담배 피우는 사람을 노려보며 가는 것 역시 서로 불편하게 만든다. 서로의 취향이 인정될 수 있게 조금씩 배려하는 문화를 만들어내면이 불편함이 사라질까. 





온전히 “이건 내 마음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게 과연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본다. 나도 모르게 남에게 영향을 주는 나의 취향은 무엇이던가. 내 집인데 어때하며 크게 음악을 틀어놓는다거나 아직 자는 사람 없을 거라 생각하며 저녁에 기타를 치는 일도 아마 같은 경우이지 않을까. 나의 취향도 좋지만 남에게 피해 가는 것을 더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일까? 

너무나 다양한 취향과 각기 다른 개인의 사정들이 만나 때론 불편함을 낳기도 하고 때론 양보와 이해를 낳기도 한다. 이게 아마 다양한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의 불편이자 화합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혀 다른 상황의 타인에 대해 듣고 보고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오늘 또 나와 다른 입장의 사람들을 들여다본다. 나의 행동들이 미안해지기도 하고 이해해주는 모든 사람들이 고마워지기도 한다. 






글_ 박진희 

그림_ 김현주

 

당신과 내가 함께 사는 세상 속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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