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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일상
By 박진희 . Mar 14. 2017

그대 나의 이름을 불러주오


아직은 쌀쌀한 바람이 남아있어 운동복 차림에 패딩점퍼를 걸치고 집 앞 한의원에 갔다. 치료실로 들어서는데 “1번 침대로 가세요, 어머님.”이라는 말이 들린다. 분명 내게 하는 말이 아닐 거라 생각하고 “전 어디로 가나요?”라고 물으니 “1번 침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한테 한 말이었다……

‘오 마이 갓,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이라니……어머님…. 어쩌지 나…. 어머님이 웬 말이야…’

어찌나 이 단어에 꽂혀있었는지 치료실 선생님이 어디가 아프냐고 묻는 말도 듣지 못했다. 

‘보통 내 나이쯤 되면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사람들이 많은 데다 낮 시간에 병원 오는 사람들은 직장인이 아니라 짐작해서 한 말이겠지..’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래도 아직 30대 중반밖에 되지 않은 데다 아이가 없는 내가 받아들이기엔 너무 가혹한 호칭이라 여겨졌다. 외국처럼 호칭 대신 이름을 부르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단 생각이 간절해졌다.



10대, 20대 때는 인간관계의 대부분이 학교나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별 망설임 없이 언니, 오빠라 불렀다. 그러나 30대로 넘어가자 다양한 연령대를 지닌 분들과 친분을 쌓게 되면서 호칭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학교나 직장에선 수평, 수직 관계 또는 직책에 따른 호칭으로 부르면 되었기에 큰 고민할 필요가 없었지만 아무것도 속한 것 없는 세상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하게 된 것이다. ㅇㅇ님이라 부르기도 하고 훨씬 연장자인 분께는 선생님을 붙여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몇몇 분들은 ‘님’이나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듣는 것을 어려워하셨다. 편히 이름을 부르라고 해도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아 슬그머니 호칭을 제외하고 본말로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었다. 이럴 때도 그냥 이름을 부르는 문화가 있다면 얼마나 편할지 상상하곤 했다.



나는 빠른 년생이라 학교를 빨리 들어갔다. 학창 시절에는 이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지만 사회에 나와보니 그렇지 않았다. 학번으로 나이를 따지는 사람들도 있었고 몇 년생인지를 확인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학번으로 위아래를 가르는 문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도 있고 재수를 한 사람도 있고 아주 뒤늦게 대학에 들어간 사람도 있는데 입학 연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래서 나는 빠른 년생이란 개념을 지우고 주민등록증에 나와 있는 년도로 나이를 말했다. 한 학년 아래 있던 사람들이 친구가 되었고 나와 학교를 같이 다녔던 사람들에게도 언니, 오빠란 호칭을 붙여주었다. 내가 학교를 일찍 갔을 뿐이라 가벼이 여기며 호칭의 기준을 정했는데 친구들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학교를 같이 다녔는데 왜 연장자냐 따질 때면 언쟁을 피할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위, 아래로 한 살씩 차이 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친구 하기로 애초에 약속을 받아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럴 때 역시 호칭 말고 이름을 부르는 문화가 간절히 필요하다 생각했다.  





나는 하나인데 많은 이름으로 불린다. 별명으로도 불리고 여보, 언니, 누나, 진희 씨, 형수, 선생님, 아줌마, 야 등 다양한 호칭으로도 불린다. 호칭이 많다는 건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있다는 것이고, 내게 부여된 역할도 다양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호칭은 오랜 전통과 문화의 산물일 테니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테지만 나의 역할이나 직책을 제외하고 오직 나의 존재로만 불릴 날을 상상해본다. 그런 날이 되면 나 또한 한참 연장자의 이름을 부를 수 있을까? 

아직은 선뜻 상상하기 어려운 모두 다 이름을 부르며 서로의 꽃이 되는 그 날을 기다려본다.



그대의 꽃이 될 수 있게 나의 이름을 불러주오




글_ 박진희 

그림_ 김현주

 

당신과 내가 함께 사는 세상 속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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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당신과 나의 일상
암 투병 후 떠난 세계여행 이야기를 담은 책, 
<오늘이 마지막이 아닐거야>의 저자.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삶을  나누고 싶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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