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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Mar 13. 2017

엄마와 딸


엄마는 나의 남편을 “아들”이라 부른다. 오랜만에 친정에 가면 버선발로 마중 나와 하는 첫마디가 “아들 왔어?”이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결같았다. “딸 왔어?”는 들어본 적이 없다.

외동딸로 부모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랐기 때문인지 엄마의 사랑을 나누어 갖는 것이 아직도 어색하다. 그래서인지 다함께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과만 대화를 나누려고 하는 것이 못내 불편했다. 나도 일 년에 두세번 밖에 보지 못한 엄마와의 시간을 갖고 싶은데 엄마는 나와 눈도 몇 번 마주치지 않고 남편과만 이야기하는 것이 못내 섭섭한 것이었다. 



올 겨울도 어김없이 찾아온 통증과의 싸움에 지쳐있을 무렵 설을 맞이하여 친정에 갔다. 해마다 겨울이면 극심한 통증이 생기는데 이번엔 신경이 눌려 다리에 약간의 마비(?)가 올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이런 고통을 이야기하면 엄마가 속상할까 봐 아무 말 없이 힘겹게 차를 타고 집에 갔는데 이번에도 엄마는 “딸”보다 “아들”이름을 먼저 부르며 맨발로 뛰어나오셨다. 아들에게 먼저 포옹하며 인사하는 동안 나는 방에 들어가 윗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그제야 나에게 안부를 물었다.‘내가 속이 좁아서 그렇지 뭐, 신랑한테 잘 해주면 좋기만 하지 뭐.' 라며 마음을 다독여도 조금은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는 어깨가 아프다면서도 9첩 반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밥을 먹다 골반부터 다리가 너무 아파 앉아 있기가 힘들어졌다. 그제야 요새 통증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많이 아프냐는 위로를 해줄 줄 알았는데 무뚝뚝한 말투로 “아프면 저 방에서 자.”라고 하셨다. 억지로 방에 떠밀리듯 들어갔고 누워서 대화에 끼어들고 있는데 엄마는 자라며 문을 닫아버렸다. 그렇게 방에 홀로 누워있는데 외로움이 밀려왔다. 엄마를 보고 싶었고 많이 아프다고 응석을 부리고 싶었고 등을 쓰다듬는 엄마의 손길을 기다렸고 아파서 하루하루 힘들다고 엉엉 울고도 싶었다. 그런데 그 무엇 하나도 할 수 없이 나는 골방에 보내져 혼자 천장을 보고 누워있었다. 밖에선 남편과 엄마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의 웃음소리, 신랑의 다정한 말소리. 나는 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있지 못하고 이렇게 따로 누워있어야 하는지 원망스러워 방문을 열고 나갔다. 


나의 통증은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남편의 건강을 위해 도라지청을 덜어주며 하루에 몇 번씩 끓여 먹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보이지 않는 건가' 하는 생각이 이제 한계의 선을 넘었다. 알았다고 퉁명하게 답을 하고 나는 많이 아파서 집에 가겠다고 이야기했다. 

“저녁은…..” 

엄마의 짧은 한마디 말은 끝내 이어지지 않았다. 말을 잇는 대신 엄마는 조용히 음식을 싸기 시작했다. 옷을 입으러 방에 들어가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갈게요.”

현관을 나서는데 젖은 눈 사이로 눈물범벅인 내 얼굴을 안쓰럽게 보는 부모님 얼굴이 들어왔다. 

‘이래서 울면 안 되는데….’ 싶었지만 이미 나는 내 감정 하나 잘 다스리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린 5살 배기 어린애가 되어 있었다. 많이 아파서 울기까지 하는 거냐며 아빠의 거친 손이 등을 토닥여줬다. 그 온기에 미안함이 물밀듯 밀려와 눈물이 더 쏟아졌다. 


차가 멀리 떠날 때까지 사이드미러로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엄마가 “아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낸다고 날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닌데 왜 그리 서운해하는 걸까… 난 왜 아직도 아이 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왜 엄마 앞에 서면 아이가 되어 위로받고 싶은 걸까. 엄마는 위로받고 싶을 때 누구에게 기대는 것일까...






집에 도착할 무렵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는 울고 계셨다. 

“얼마나 아프길래 그렇게 울어. 미안하다. 그렇게 아픈지도 모르고…”

“아니야. 내가 어리광 좀 많이 부렸어. 미안해.”

“내가 너희 오면 아들을 더 챙기느라 맘이 상하지? 결혼해서 집 떠나도 여기는 너의 집이지만 아들은 남의 집이고 아무리 잘 해줘도 어려울 수 있잖아. 그래서 더 잘해주게 되고 편하게 있게 하고 싶어. 우리가 가족이 된 지 3년 반밖에 안되었잖아. 30년을 함께 한 가족처럼 하나 되려면 더 많이 이야기 나누고 더 많이 사랑해야 하잖아. 그래도 너의 아픔을 모른척해서 너무 미안하다. 그렇게 아픈 거 참고 있는 줄 알았으면 더 신경 쓸걸 그랬어. 미안해.”

“미안해, 엄마. 나의 고통을 엄마에게 기대 덜어내려 한 것 같아. 미안해.”


모녀는 그렇게 울고 불며 속 이야기를 터놨다. 그렇게 속상하게 했던 무관심의 이유를 이해하고,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실은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나의 마음을 서로 허심탄회하게 털어냈다. 그리고 엄마와 나는 다시 또 한 시간씩 통화하다가도 이어지는 잔소리에 귀찮아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사랑하다가, 나만의 당신이었다가 돌아서면 미워하다가, 당신도 나와 같은 상처받기 쉬운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에 눈물 쏟다가, 내가 안아주기도 하고 당신의 품에 들어가기도 하는 그런 모녀 사이로….





글_ 박진희 

그림_ 김현주

 

당신과 내가 함께 사는 세상 속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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