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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Mar 08. 2017

자유롭지 않은 자유시간

4개월간 편집디자인 프로그램을 배우러 학원을 다녔다. 숨 막히는 만원 버스,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던 선생님의 설명, 꼬르륵거리는 배,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와 쉴 틈도 없이 해야 했던 과제. 모든 것이 힘들기만 했던 날을 보내며 속으로 다짐했던 것이 있다. 


이거 끝나기만 해봐라, 진짜 제대로 놀 거야. 세상 그 누구도 안 부럽게 놀기만 할 거야.


수업이 끝난 첫날, 기분이 좋아서 오랜만에 학우들과 소주를 한잔 마셨다.

둘째 날, 숙취가 해소되지 않아 하루 종일 잠만 잤다.

셋째 날, 컨디션이 좀 회복된 것 같아 동네 친구와 맥주를 한잔 마셨다. 

넷째 날, 숙취가 해소되지 않아 하루 종일 잠만 잤다.

다섯째 날, 새 프로젝트를 위해 회의를 하고 성공적인 시작을 위해 맥주를 마셨다.

여섯째 날, 며칠 동안 안 먹던 술을 먹었더니 힘들어서 잠만 잤다.

(뭐지? 이상하게 규칙적이다…)


놀 거라고 단단히 벼르고 있더니 결국은 술과 잠의 반복이었다. 이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나만의 자유시간을 보내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본다.



순간의 즐거움을 주는 술, 좋다가도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기도 한 것.




힘겹게 얽혀있던 생활의 그물망에서 간신히 빠져나왔을 때, 그 해방감을 느끼며 즐기는 것은 바로 빠져나온 그 순간뿐. 조금 시간이 흐르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오히려 그 힘겹던 그물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어 하거나 다른 복잡한 세상 속으로 들어가려고 길을 찾기도 한다. 



어쩌면 완전한 자유시간은 없는 것은 아닐까? 지독한 생활의 그물을 벗어나면 자유로운 바다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겹겹이 쌓인 그물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차라리 다행일까. 내가 노는 방법을 잊은 건 아닐 테니. 아주 작은 시간의 틈도 열심히 활용하여 즐거움을 찾던 젊은 시절의 나를 잃은 건 아닐 테니 말이다. 


어느덧 나이를 먹어 살아가는 과정도 지치고 여유를 가질 꿈도 못 꾸다 눈 앞에 떨어진 온전한 나의 시간마저 그냥 흘려버리는 무기력한 사람이 된 건 아닌지 돌아본다. 젊어지고 싶다면, 나이만 먹은 무기력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역시 재밌게 놀아야 한다는 결론 앞에 선다. 물론 20대 초반처럼 에너지 넘치는 활동을 할 순 없겠지만 그때처럼 즐거움이 우선하는 삶을 살려고 애써야겠다. 

재미있는 것을 찾아 헤매는 것은 서른이 되어서도 마흔이 되어서도 혹은 일흔이 되어서도 변치 말아야 하는 우리의 과제인 것이다.


벗어나고 싶었지만 막상 그곳을 빠져나오면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고 시간을 허비하곤 한다.



글_ 박진희 

그림_ 김현주

 

당신과 내가 함께 사는 세상 속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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