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간 편집디자인 프로그램을 배우러 학원을 다녔다. 숨 막히는 만원 버스,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던 선생님의 설명, 꼬르륵거리는 배,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와 쉴 틈도 없이 해야 했던 과제. 모든 것이 힘들기만 했던 날을 보내며 속으로 다짐했던 것이 있다.
이거 끝나기만 해봐라, 진짜 제대로 놀 거야. 세상 그 누구도 안 부럽게 놀기만 할 거야.
수업이 끝난 첫날, 기분이 좋아서 오랜만에 학우들과 소주를 한잔 마셨다.
둘째 날, 숙취가 해소되지 않아 하루 종일 잠만 잤다.
셋째 날, 컨디션이 좀 회복된 것 같아 동네 친구와 맥주를 한잔 마셨다.
넷째 날, 숙취가 해소되지 않아 하루 종일 잠만 잤다.
다섯째 날, 새 프로젝트를 위해 회의를 하고 성공적인 시작을 위해 맥주를 마셨다.
여섯째 날, 며칠 동안 안 먹던 술을 먹었더니 힘들어서 잠만 잤다.
(뭐지? 이상하게 규칙적이다…)
놀 거라고 단단히 벼르고 있더니 결국은 술과 잠의 반복이었다. 이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나만의 자유시간을 보내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본다.
힘겹게 얽혀있던 생활의 그물망에서 간신히 빠져나왔을 때, 그 해방감을 느끼며 즐기는 것은 바로 빠져나온 그 순간뿐. 조금 시간이 흐르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오히려 그 힘겹던 그물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어 하거나 다른 복잡한 세상 속으로 들어가려고 길을 찾기도 한다.
어쩌면 완전한 자유시간은 없는 것은 아닐까? 지독한 생활의 그물을 벗어나면 자유로운 바다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겹겹이 쌓인 그물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차라리 다행일까. 내가 노는 방법을 잊은 건 아닐 테니. 아주 작은 시간의 틈도 열심히 활용하여 즐거움을 찾던 젊은 시절의 나를 잃은 건 아닐 테니 말이다.
어느덧 나이를 먹어 살아가는 과정도 지치고 여유를 가질 꿈도 못 꾸다 눈 앞에 떨어진 온전한 나의 시간마저 그냥 흘려버리는 무기력한 사람이 된 건 아닌지 돌아본다. 젊어지고 싶다면, 나이만 먹은 무기력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역시 재밌게 놀아야 한다는 결론 앞에 선다. 물론 20대 초반처럼 에너지 넘치는 활동을 할 순 없겠지만 그때처럼 즐거움이 우선하는 삶을 살려고 애써야겠다.
재미있는 것을 찾아 헤매는 것은 서른이 되어서도 마흔이 되어서도 혹은 일흔이 되어서도 변치 말아야 하는 우리의 과제인 것이다.
글_ 박진희
그림_ 김현주
당신과 내가 함께 사는 세상 속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