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희 Mar 24. 2017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3년 만에 올라온 세월호


2014년 4월 16일.


그날 나는 멕시코에서 여행 중이었다. 멕시코시티에서 와하까라는 동네로 이동하는 야간 버스를 타기 위해 숙소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곳의 시각으로 오후 9시쯤, 버스 타는 곳으로 떠나려고 하는데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머리 위에서 양동이로 물을 붓듯 내리는 비를 피해 숙소의 주방으로 피해있었다. 조금 잠잠해지면 떠나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는데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온몸이 젖을 것을 대비하여 옷을 갈아입고 우의를 입었다. 떨어질 체온을 올리기 위해 작은 담요도 꺼내기 쉬운 곳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순간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350여 명이 탄 세월호 여객선 침몰 중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이 탄 배가 기울었단 소식과 45도쯤 기운 배의 사진이 속보로 전해졌다. 엄청난 배의 크기와 그 안의 사람 수만으로도 이것이 얼마나 큰 사고인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 완전히 침몰한 것이 아니고 구조활동을 하고 있으니 큰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제발 크게 다치는 사람이 없었으면 그래도 혹시 모르는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모아 기도를 하며 굵은 빗줄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별일 없을 거야... 제발 모두 빨리 춥지 않게 구조되길…"



버스는 캄캄한 터널을 통과하듯 어둠 속을 쉬지 않고 달렸다. 나를 포함한 두세 명을 제외하곤 모두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운전기사도 졸음이 쏟아지는지 창문을 활짝 열어 찬 바람을 쐬며 음악을 크게 틀고 따라 불렀다.  창밖에는 마치 검은 도화지라도 붙여놓은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차내의 빛에 반사되는 내 얼굴만 희미하게 비쳤다. 이런  어둠 속에서 운전기사에게 모든 것을 내 맡기고 잠을 잘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아까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다들 무사히 밖으로 나왔겠지?  

그런 큰 여객선은 멕시코의 시골 관광버스가 아니니까 다들 빠른 대응을 했을 거야… 아직도 구조중이라면 제발 다치는 사람 없길…'



나는  그날 그 누구도 저 세상의 빛이 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구조중 다칠 것들이 염려되어 그것을 걱정하며 기도했다. 다치지 말라고.


새벽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밤새 잠을 편히 자지 못해 피곤했고 비에 젖은 옷 때문에 몸은 차가워져 있었다. 새벽 공기도 차가웠다. 담요를 둘둘 말고 앉아 해가 뜨길 기다렸다. 추워 죽겠다며 왜 비가 왔냐고, 왜 예정보다 훨씬 일찍 도착한 거냐고 투덜거렸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서야 천근만근 무거워진 몸으로 숙소를 잡아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오열했다.

버스를 타고 아침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던 그동안 배는 완전히 침몰했고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돌아오질 못했다.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고작 비를 맞고, 졸음을 쫓으려 노래를 부르는 아저씨를 불안해했고, 도로 위의 어둠을 두려워했고, 새벽찬 공기에 떨었는데, 그뿐이었는데 이렇게 힘들었는데…. 아이들은, 그 배에 있던 분들은 얼마나 추웠을지…. 나는 너무나 미안해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역만리의 땅에서 그 비참한 참사를 지켜보고만 있다는 게 힘들었다. 나는 무슨 지상 천국을 찾겠다고 이곳까지와 여행을 하려 했던가. 눈앞의 비명도 듣지 못하고 손 하나 내밀어 줄 수없는데. 멀리 있던 나 역시 이렇게 좌절하고 절망에 빠졌는데 그것을 생생히 지켜보고만 있었어야 할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은 또 얼마나 찢어졌단 말인가. 온 국민이, 전 세계의 사람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에 세뇌된 듯 무력감에 휘감긴 때였다.



그 후로 며칠을 앓아누웠다.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마음이 어지럽게 싸워댔다. 정부의 무능력이 곧 나의 무력감이었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뽑아 세운 정부의 무능력이 가라앉는 배에서 탈출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에서 나의 무력감을 맛보았다. 우리가 보다 나은 선택을 했다면….




여행을 마치고 3년이 흘렀다.

 많은 것들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바뀌고 웃고 울고 즐기는 그 10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세월호는 계속 그 바닥에 누워있었다. 우리는 생활에 돌아가 먹고사는 것을 걱정하는 평범한 사람이 되어갔지만 가족과 친구를 잃고 울부짖던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그 찬 바다 바닥에 남겨져있었다. 우리는 삶에 돌아가도 이것을 잊을 수가 없었고 잊어서도 안되었다. 그래서 어느새 내 곁엔 항상 리본이 하나 따라다녔다. 그 어둠 속에서 아직도 누워있는 그들을 잊고 싶지 않았다.



그 배가 이제야 떠올랐다.


너무 오래 걸렸다. 나의 여행 기억도 이제 너무나 희미해져 가는 3년,  그러나 그 빗소리와 어둠, 추위만은 잊을 수 없던 그날, 나의 따뜻함이 너무나 미안했던 그날로 이제야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무능은 국민들이 심판하고 진실은 수면 위로 떠올라 희생자들의 넋이 조금이라도 위로되길 기도해본다.  그리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9명의 희생자들이 모두 가족의 품에 돌아오길 간절하게 빌어본다. 그리고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외쳐야겠다.




 빛이 된 아이들과 희생자들의 눈물을 기억하며....





글_ 박진희

그림_ 김현주


당신과 내가 함께 사는 세상 속 일상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아직도 까불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