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구쟁이었다.
아주 어릴 적 말고 고등학생때부터 말이다. 학창시절을 거치며 부모보다는 또래 친구의 영향을 더 많이 받기 시작했고, 말도 잘하고 재미있는 친구들을 많이 사귀며 나 역시 개구쟁이가 되어갔다.
쉬는 시간에 쿵후를 배우겠다고 이소룡 흉내를 내며 발차기를 하다가 꽈당 넘어지기도 하고 체육시간에 앞에 나가 시범을 보인다며 운동이 아닌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자습시간에 빵을 먹다 걸려서 불려 나가면서도 태연스럽게 “선생님도 배고프시죠?”하며 빵을 드리고 그냥 돌아와버리는 대담함도 지녔었다. 엉뚱하게 까불던 일화는 밤새워 이야기해도 모자를 정도로 많았다. 그때 나는 참 어렸었다.
철 없는 어린아이처럼 하고픈 대로 하던 성격은 20대가 되어서도 그대로였다.
좋아하는 게 있으면 지구 끝까지라도 찾아가 얻고자 했고, 신나면 눈치볼 것도 없이 신나게 춤추었고, 가슴에 담아둘 것 없이 머릿속에 있는 말들을 던져냈다.
이때의 나는 이렇게 아이처럼 쭉 늙어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처럼 살아갈 줄 알았던 내가 뒤늦은 사춘기를 앓았다.
아이와 성인 사이의 괴리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던 감정을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해 ‘사춘기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10대를 벗어나 성인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아직 마음은 어린 학생에 머물러있던 시기. 그토록 어른이 되고 싶어했지만 막상 어른이 되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고 오히려 감당해야 하는 것이 많아지기만 했던 시기. 내맘대로 하고 싶지만 학생때처럼 모든 것들이 용인되기를, 그리고 독립적이지만 나의 선택에 실패가 없게 누군가 이끌어 줬으면 하는 미련들이 어른으로 성장하길 방해하고 있었다.
20대가 훌쩍 넘어 갑자기 어른이 되려고 하는 마음의 움직임에 괴로워했다. ‘적당한 직업을 찾자, 이미 노느라 뒤쳐진 것들을 따라잡기 위해 나는 더 열심히 노력해야한다, 성공하자’ 이런 마음의 외침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결국 나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갔다.
그래도 20대에는 10대의 기질이 많이 남아있어 좋았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욕구와 현재를 원없이 즐기려는 욕구가 아주 적절히 섞여 있었다.
‘이런게 어른이라면 뭐 아주 힘든게 아니네’라고 생각할 무렵, 또 사춘기가 왔다. 이번엔 30대 사춘기였다. 30대 사춘기는 너무 신나서 어깨가 들썩이는데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는 내 모습에서 시작되었다. 난 더 놀고 싶다고 마음은 외치는데 몸은 왜 눈치를 보는 것일까. 그제서야 사회의 인식을 신경쓰게 되는 30대 사춘기가 찾아왔다는 걸 알아차렸다.
30대가 뭐라고, 하고 싶은 (될 턱이 없는) 이상을 끝까지 추구하는 것도 바보요, 신난다고 몸을 들썩이면 주책이요, 머리에 있는 말을 가슴에 담지않고 바로 내뱉으면 경솔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현상을 떡 하니 마주하게 된 것이다.
대략 인생의 3분의 1일 정도 살아왔지만 여전히 원하는대로 가고 싶고, 더 놀고 싶고, 더 신나고 싶은 아이의 마음은 그대로이다. 그렇지만 세상에선 미래를 위해 저축해야 하고, 안정된 직장을 다니기 위해 힘겨운 한숨을 내쉬고, 결혼과 출산과 노부모의 미래도 걱정해야 하는 때라고 시도때도 없이 일러준다. 매년 늙어가는 과도기마다 이런 괴리감에 무너진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이 사춘기의 고비를 넘어 가길 격렬하게 거부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더 즐겁고 싶고 더 까불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홀로 거울을 보며 막춤을 추다 신나게 웃는 까닭이다. 아직은 통장 잔고 따위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신나게 웃고 싶을 뿐이다.
나는 어른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
글_ 박진희
그림_ 김현주
당신과 내가 함께 사는 세상 속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