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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May 16. 2017

쓰기 예찬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아무 데도 속해있지 않다 마침내 직장에 들어갔다. 직업이 없을 때는 그 무슨 일이라도 좋으니 바쁘게 살아가면 좋겠다고, 나도 어떤 곳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고 말을 하고 싶었었다. 그러나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돌아와 외로워하는 고양이도 쓰다듬어 주고 청소도 하고 나면, 또 일어나기 위해 자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이런 과정이야 마땅히 다가올 일이라 각오하고 있었으니 그리 힘든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도무지 바빠서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스쳐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읽고, 카페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다정한 응원의 말에 나도 빙긋이 웃어볼 여유도 없고, 내가 하는 말과 생각의 내밀한 대화도 돌이켜 볼 시간이 사라졌다. 생각이 사라지자 글을 쓸 시간 역시 사라졌다. 지나쳐가는 사소한 것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소재로 글을 쓰던 나의 일이 이제는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게 되었다. 나는 밀린 그림일기를 개학 전날 몰아 쓰는 학생이 된 듯 멍하니 백지를 바라보며 내가 뭘 하고 살았는지를 회상했다. 그동안 누가 내 곁에 있어주었는지, 내게 얼마나 큰 위로를 해주었는지, 혹은 내가 다른 사람을 얼마나 걱정하고 사랑했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 누군가 힘내라며 등을 두드려 주기도 했고, 같이 웃어주고, 나의 글을 기다려주기도 했지만 그들의 건넨 말들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사색을 잃어버린 나날들이었다.


나는 어디로??  <illustration by patti>




"이것도 책이라고 썼네."
"이런 말은 누가 못 써. 나는 더 잘할 수 있어."

서점 가면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분명 나도 아주 어린 시절에는 이런 말을 하고 다녔을 것이다.

그렇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글쓰기일 수도 있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되고 머릿속에 담긴 생각을 풀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부족하지만 글을 쓰고 책을 출판하고 나선 그런 생각을 품지도 입에 담지도 않게 되었다. 바쁘고 팍팍한 삶에서도 끊임없이 사고하고 기억하고 글로 풀어내는 행위 그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 몸소 경험해보았기 때문이다.

겉도는 막연한 생각을 구체적인 글자로 표현해내면서 뭉뚱그려있던 나의 마음이 한 올 한 올 세밀하게 들여다 보이는 과정. 보고 듣고 배운 지식이 한데 모여 정리되며 새로운 정보와 지식의 장을 열어주는 것. 입을 다물면 묻히는 수많은 진실들이 영원히 기록되는 것. 이것이 글이었다.

나와 다른 생각, 내가 배운 것과 다른 지식, 마주하고 싶지 않던 진실들일지라도 글은 막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다르거나 부족할지라도 쓰는 행위 자체에 찬사를 보낸다.




사는 게 정신없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무엇을 써야 하나요?

대부분 이런 생각에 쓸 엄두도 못 내고 산다. 그래서 한 할머니가 꽃 한 송이를 가지고 쓴 어설픈 시를 보며 반성한다. 바쁘다,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는 것은 그저 피해 가고 싶은 나의 변명일 뿐이라고. 잘 쓰던 못 쓰던, 좋은 소재가 있던 없던 자신을 바라보고 위로할 시간이 필요하기에 글은 계속 써야 하는 것이라고.


예전에 한 선배가 조언을 해주었다.

“뭐라도 써. 아무 거라도. 정 쓸게 없으면 그냥 눈에 보이는 거라도 써. 그게 언젠가 먼 훗날에 너에게 길을 알려 줄 거야.”







입사 이래 가장 바쁜 한 주를 보내고 있지만, 오늘은 눕기 전에 무어라도 쓰고 자야겠다 생각했다. 스스로 해주는 위로가 가장 솔직하기에 생각을 적으면 부끄럽지만 편안해지는 것 같다. 글자들이 백지를 하나 둘 채울 때마다 마음에서 짐이 하나씩 덜어진다.


바쁜 삶에서 나를 놓지 않는 방법. 그것은 끊임없이 나와 이야기하고 글을 쓰는 것이었다.




서로 다른 우리가 공존하는 이 시간,

그 시간 속의 일상과 단면을

이야기하다.

그리다.

나누다.

 writing_ jinhee  X  drawing_ pa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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