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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Jun 05. 2017

선물하기 좋은 달

한 쇼핑몰에서 ‘5월은 선물하기 좋은 달’이란 카피를 내달았다. 

유독 'ㅇㅇ의 날'이 많은 5월을 겨냥한 기획 상품들이 보기 좋게 나열되어 있었다. 어른들을 위한 건강식품,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 다양한 꽃 상품들까지 많은 물건들이 있었지만 모두 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흔한 상품들이었다. 나는 결국 아무것도 고르지 않은 채 쇼핑몰 페이지를 닫았다. 특별함을 기대했지만 이내 어리석은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물건을 사드려서 마음에 들어하신다면 다행일 텐데, 부모님은 썩 만족스럽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면 너무 좋아서 아껴두려고 하신 걸까. 한 번은 음료형 건강보조식품을 사다 드렸는데 개봉도 하지 않은 채로 찬장에 무려 3년이나 놓여 있었다. 화장품을 사다 드려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오래되어서 기름과 화장품 성분이 분리되어 둥둥 떠있고 색도 이상하게 변해있었다. 그래서 상품권을 드렸더니 그건 이용하셨다. 다만 상품권으로 산 새 운동화를 집에 모셔두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이런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현금을 드리는 게 가장 효율적이란 생각이 들었고 집에 갈 때면 엄마 몰래 보물찾기 하듯 봉투를 서랍에 숨겨놓고 나왔다.

그런데… 

그러면 뭘 하나… 엄마 역시 나 몰래 내 가방에 용돈 쓰라며 봉투를 넣어주시는 것을…. 

결국 서로 쓸데없이 돈을 쓰는 것 같으니 서로 아무것도 주지도 받지 말고 그저 맛있게 밥 먹고 서로 즐겁게 이야기하자고 다짐을 받아냈다. 엄마도 이런 물건보다 그때그때 필요한 게 생기면 인터넷으로 주문해주는 게 더 필요하다며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이야기하겠다고 하셨다. 


주지도 받지도 말자 했지만 마음이 쉽게 따라줄 리 있겠는가. 어김없이 어버이날이나 생신이 다가오면 무엇을 해 드려야 하는지, 고민에 편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게다 결혼을 하고 나니 우리 집뿐 아니라 시댁까지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고민은 두 배로 커지게 되었다. 그저 속 편하게 양가에 똑같이 용돈을 드리고 오자고 결심을 해도 갑작스럽게 지출해야 하는 큰돈에 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명절, 생신 등을 챙기기 위해 적금을 들고 있다는 친구의 말이 이제야 이해되었다.


5월은 정말 선물하기 좋은 달일까? 

그동안 키워주시느라 애쓰신 것에 비하면 용돈을 드리고 선물을 드려도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그 보답을 떠나 선물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 매년 돌아오는 행사에 의미 없이 용돈을 드리는 게 정석처럼 되어 버린 이 문화를 돌아보고 싶다. 


친구가 외국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외국인 친구가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정성스러운 손글씨가 담긴 카드를 준비했다고 한다. 몇 번이나 고심하며 문구를 선택하고 글씨를 가다듬어 고른 카드를 보여주며 한국에선 어버이날에 어떻게 마음을 전하는지 물었다. 

“음, 한국에선 많은 사람들이 용돈을 드려.”
“돈?? 이렇게 소중한 날에 부모님께 돈을 드린단 말이야?”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게 우선되는 나라에선 돈으로 어버이날을 기념하는 것이 무척이나 이상했을 것이다. 용돈을 드리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빠진 월례행사 같은 용돈은 주는 사람에겐 부담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선물은 받는 사람에게 유용한 것을 준다고 가치 있는 게 아니다. 고르는 사람의 마음이 가장 가치 있다고 본다. 선물을 고르는 그 순간, 상대방의 마음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얼마나 기뻐할지를 상상하기에 선물이 가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런 선물의 귀한 가치를 담지 않는 것 같다. 




용돈은 형편이 조금 여유로운 달에 드리고 어버이날에는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하면 안 되는 것일까? 선물하기 좋은 달이라지만 시급제 아르바이트생으로 겨우 생활하고 있던 내겐 5월은 선물하기 어려운 달이었다. 

나는 몇 번이나 쇼핑몰을 들락거리고 통장을 들여다보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시댁에 가는 날, 남편은 책을 5권 샀고 나는 과일을 샀다. 다음 달부터는 둘 다 취직해서 월급을 받으니 앞으로 두 분 모시고 맛있는 것도 먹고 놀러도 가자고 말씀드렸다. 고개를 떨구고 있다가 아버지, 어머니를 바라보았는데 그냥 우리가 온 것만으로도 좋으신지 함박웃음을 짓고 계셨다. 책을 만지작만지작 하시며 얼굴 보니 좋다고 계속 말씀하셨다. 

친정 부모님께는 편지를 썼다. 엄마는 전화하면 하염없이 보고 싶다고 말씀을 하셨다.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바다 건너 사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못 찾아뵙는 것인지. 그 마음 담아 편지를 썼다. 아빠는 약주를 한 잔 걸치시고 보고 싶다고 전화를 했고, 나는 못된 딸이 뭐 그리 보고 싶냐며 울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고 나는 아빠한테 편지를 썼다.


다음번 시댁에 갈 때에 시부모님께도 편지를 써야겠다.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결혼식장 들어갈 때, 그리고 병상에서 일어났을 때. 그렇게 시부모님께 편지를 썼었다. 미안하고 고맙고 죄송하고 사랑해서. 잊고 있었다. 어떻게 용돈을 드려야 하는지 고민하는 동안 나는 가장 중요한 마음을 잊었던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네 분께 모두 편지를 쓰겠다고 다짐했다. 





서로 다른 우리가 공존하는 이 시간,

그 시간 속의 일상과 단면을

이야기하다.

그리다.

나누다.

글_ jinhee  X  그림_ pa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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