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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Nov 04. 2020

책방 고양이, 쫄순이

11월 4일 기록

마당에서 낮잠자고 있는 쫄순이


작년 이맘때 책방의 마당에서 상주하던 고양이 쫄순이가 사라졌다. 며칠을 쫓아다니며 울던 것을 모른 채 하여서 토라진 줄로만 알았다. 우리에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 다른 곳을 찾아간 줄 알았는데 6일 만에 나타났다. 평소와는 다른 힘겨운 울음소리를 내며  담을 겨우 넘어왔다. 멀리서 바라봐도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이었다. 다가가 살펴보니 쫄순이의 왼쪽 앞발이 퉁퉁 부어있는 게 아닌가. 원래 발의  배정도로 크게 부어있었다. 시골의 동물병원은 멀고 저녁 늦게까지 하는 곳은 없고 당장 손쓸  없어 책방 사무실에 박스와 담요를 깔아주고 아픈 아이를 눕혔다. 겨우겨우 걸어왔는지 지쳐 보였고 우리를 보자 안도했는지 그제야 사시나무   덜덜 떨었다. 눈도 제대로  뜨고  죽어가는 소리만 내고 있었다. 그날 밤은  시간마다 깨서 쫄순이를 돌봤다. 그냥 옆에서 바라만 보고 있었는데 그것만이 내가    있는 도움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동물병원에 갔다. 다른 고양이에게 물린  같고 이미 염증이 시작되어 농이 가득 찬 상태이며 지금은 수술 같은 방법을   없고 농이 깨끗하게 빠지게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항생제 주사를 맞고 소염제를 받아 농이 흘러내리는 것을  흡수할  있게 패드를 대고 돌아왔다. 다음 날부터 상처에서는 누런 고름이 흘러내렸고 일주일  벗겨진 상처 아래로 속살이 드러났다.  땅에 닿는 것이 아플  같아 붕대를 감고 2 정도를 지냈다. 농이 심하게 찼던 일주일 동안 쫄순이는 거의 물만 조금 먹으며 버텼다. 담요를 덮어줘도 추운지 계속 덜덜 떨었고 밥을 입에 넣어줘야 겨우 목으로 넘겼다. 아픈 몸으로 화장실을 가는 것이 힘들어 참았던지 방광염까지  고생했던 쫄순이는 서점 사무실  칸에서  달을 누워있다 마침내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책방에서 그렇게  달을 머물어서인지 이젠 자신의 집이라 여기는  같다. 자신만의 아지트였던 햇살 좋은 창가 아래 방석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싶어 하는데 이제는  자리에 손님이 있다. 내 거야라고 외치는 것처럼 책방에서 야옹야옹 시끄럽게 울어댄다.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고양이는 처음 봤다. 쫄순이를 그냥 그곳에 왔다 갔다 하게 두고 싶지만 모두 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자꾸만 울어대는 소리에 다들 멈춰서 쫄순이만 바라보고 아이들은 꼬리를 잡아당기고 그러다 우당탕탕 뛰다 책장에 부딪힐  같은 불안감도 생겼다. 밥을 먹이고 잠시 놀아주다 밖으로 내보내고 나면  녀석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 많은 고민이 든다.

치료가 거의 끝나갈 무렵의 쫄순. 상처를 핥지 못하게 넥카라를 하고 있다


누군가 중성화 수술을 시켜줬던 쫄순이,  끝이 잘린 흔적이 없는 것을 보아선 어떤 따뜻한 집에서 키웠던 고양이였을 텐데 어쩌다 길에서 살게  것일까. 다시 추워진 계절이 다가오자 근심이  늘어난다. 사람처럼 잠이라도 들어와 자고 가면 좋으련만, 이제는 길냥이 생활에 익숙해진 탓인지 문을 닫아 놓으면 열어달라고 애원을 하니 강제로 들여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언젠가  공간을 떠나야 할 때가 올 텐데  녀석을 어떻게 함께 이사할  있을지 고민이 된다. 그런 고민에 앞서  겨울 춥지 않고 따뜻하게 그리고 다른 녀석들과 싸우지 않고 가끔 책방 햇살 아래서 늘어지게 낮잠 자고 일어나길 바란다. 책방에 소중한 것들이 하나씩 쌓여가고 있다. 잃을  없고 버릴  없는 소중한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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